중견 컴퓨터업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한보부도로 자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업체간 저가 출혈경쟁의 문제점이
표면화돼 연쇄부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중견 컴퓨터업체인 한국IPC(회장 김태호)가 7백억원대의
부도를 내고 이 회사에 6백억원 가량의 지급보증을 해준 멀티그램이 연쇄
부도를 낸데 이어 아프로만 마저 무너져 중견컴퓨터업체의 존립기반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연쇄부도파문은 여기에 그치지않고 용산의 중견 유통업체인 H사와 대형
부품공급업체인 S사등을 비롯한 상당수 업체들에도 미쳐 부도태풍의
사정권에 들었다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

올해로 창립20년째 되는 중견PC업체인 아프로만은 95년 4백억원, 96년
1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조립PC업체를 중심으로한 저가모델의 치열한 판매전이
벌어지면서 출혈판매와 매출부진으로 3백60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
자금난에 시달려왔다.

이 회사는 이러한 가운데서도 세양정보통신이 부품을 공급하며 지원을
해줘 겨우 현상유지를 해왔다.

그러나 지난달말 한국IPC의 부도로 수십억원대의 부품대금을 못받아
자금난을 겪게된 세양이 아프로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면서 아프로만의
자금줄이 막혔다.

세양은 지난 10일 3백40억원에 이르는 채권보전을 위해 아프로만 매장에서
컴퓨터등 제품등에 대한 회수조치에 나섰다.

이러한 부도사태는 저가경쟁을 기반으로한 무리한 매출확장으로 인해
벌어졌지만 주범은 역시 경기침체로 인한 극심한 소비심리 위축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명예퇴직 바람에 한보부도까지 겹쳐 자동차 다음으로
값비싼 내구성 소비재인 컴퓨터에 대한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

또 작년부터 세진컴퓨터랜드가 가격파괴를 앞세워 저가형 PC시장을 공략,
조립PC시장을 크게 잠식한데다 대형PC메이커들마저 저가모델을 경쟁적으로
내놓아 중견PC업체의 주력품목인 저가형PC분야에서 공급과잉 현상이 일어난
것도 연쇄부도의 원인이 됐다.

최근의 한보부도사태에다 한국IPC등 컴퓨터업체의 도산사태가 겹쳐 금융
기관들이 중견PC업체에 신용대출과 어음할인을 꺼져 자금줄을 막아버린
것도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컴퓨터 관련업체에서 발행한 어음의
할인을 꺼리고 있어 극심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용산전자상가를 중심으로한 유통업체들 사이에서도 연쇄부도를
우려, 어음결재를 회피해 자금회전이 둔화된데다 거래도 급격하게 줄고
있다.

이에따라 자본력이 취약한 상당수 업체의 연쇄부도가 우려된다.

용산 상우회의 한 관계자는 "항간에는 이번 부도에 휘말린 업체들중 25%
이상의 주인이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며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 유병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