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는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수님, 그러나 랠리에 참가해
운전대만 손에 넣으면 불타는 정열로 사막을 질주하는 카레이서"

이재영 교수(49.외대 불어과)는 두 얼굴의 소유자다.

이교수를 처음 만난 사람은 그가 카레이서란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른다.

겉으로 보면 부드러운 얼굴에 자상하고 점잖은 교수님의 전형적인 인상이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도 험난한 사막에선 자신도 모르게 배고픈 사자와 같은 맹렬함이
끌어오른다고 말한다.

"아마 어렸을 적부터 차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운수업을 하는 부친 덕분에 버스를 타고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기억이
많아요.

어릴적 추억의 절반 정도가 차와 관련돼 있을 정도이니까요"

이교수는 대학시절부터 오너드라이버였다.

70년대 초반 당시로선 드문 경우.

신진자동차의 코로나를 몰고 다녔던 그는 멋쟁이 소리를 듣긴 했지만 사실은
공부밖에 모르는 불문학도였다.

그런 그가 랠리와 접하게 된 것은 지난 85년 프랑스 유학시절.

어느 날 집 근처에서 "파리-다카르랠리"에 참가한 경주차들이 출발하는
장면을 보고 그는 충격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한다.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속에서 경주차들이 굉음을 울리며 출발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땐 숨이 멎는 듯 했습니다.

"아 ,바로 저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젠가는 "나도 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더구나 다카르랠리가 펼쳐지는 광활한 사하라사막은 그에겐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88년 다카르대회에 통역사겸 네비게이터 자격으로 출전 제안을
받고 쾌히 승낙했다.

한국사람으로선 첫 랠리 출전인 셈이었다.

당시 완주에 성공한 그는 자신감을 얻어 그 뒤에도 파리-북경대회(92년),
그라나다-다카르대회(95년), 샤모니대회(96년) 등에 연속 참가했다.

"랠리의 계절인 겨울만 되면 가슴이 뛴다"는 이교수는 가끔 주말이면
갤로퍼를 몰고 남들이 잘 안가는 오지탐험에 나선다.

강원도 골짜기 비포장도로가 자주 찾는 곳이다.

물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그에게는 꿈이 한가지 있다.

남북이 하나되는 날 남쪽 끝에서부터 북녁땅을 지나 유럽 끝까지 경주차를
몰고 대장정을 벌이는 것이다.

< 정종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