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은 부도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영세사채업자는 물론 개인들로
부터도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끌어다 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납품업체에 융통어음을 떠넘기고 이들로부터 반강제로 진성어음을
교환받아 할인해쓰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31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보철강은 그동안 자금을 끌어모으는 과정에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부도직전에는 비교적 금융정보가 취약한 지방의 영세사채업자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집중조달, 큰 피해를 입혔다.

한보철강측의 자금동원수법은 "하청.납품업체와 어음바꿔치기" "어음쪼개기"
"위장계열사의 어음발행" "진성어음 불법변조" 등 실로 다양했다.

한보철강에 기계를 납품하고 있는 P사는 이달 중순경 1천만원짜리 진성어음
과 한보철강의 1천2백만원짜리 융통어음을 교환, 납품대금을 날리고 말았다.

한보철강이 발행한 융통어음이 시중에 유통되지 않자 재무구조가 건전한
납품업체의 진성어음과 바꿔치기 하는 수법이었다.

이 회사관계자는 "납품하는 처지에 한보철강측의 교환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면서 "우리같은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보철강은 또 "어음쪼개기"를 통해 지방의 영세사채업자들을 집중공략했다.

대구에서 사채업을 하는 K모씨는 "한보철강측의 8백만원짜리 어음을 할인해
줬으나 전액 떼이고 말았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 4천8백만원짜리였던
어음을 쪼갠 것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어음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시장상인 등 개인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위장계열사의 어음을 발행하는 방법도 자주 사용됐다.

한보그룹의 계열사로 등록돼있는 회사의 이름으로 어음을 발행, 금융정보에
어두운 중소사채업자들을 울렸다는 것이다.

D은행 관계자는 "위장계열사들이 일부 지방은행에 단기자금을 예치한뒤
그것을 토대로 어음할인 또는 신용대출에 이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정보가 제한된 서민금융기관들은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일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