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이름을 짓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이름이 곧 제품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판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
이다.

특히 자동차에서 이름은 그 차의 수명까지 좌우한다.

그래서인지 각 업체들은 신차를 내놓을때 이름을 짓는데만 무려 6개월
이상의 기간과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투자하기도 한다.

자동차이름 짓기가 어려운 만큼 메이커에 따라 적게는 수십개에서 많게는
1천여개의 이름을 미리 상표등록해 놓기도 한다.

차이름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가.

사내에서 공모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마케팅이나 상품기획부서에서
아이디어를 낸다.

차 이름을 지을 때는 갖가지 아이디어가 동원된다.

이미 갖고 있는 이름중에 적당한 것이 없을 경우 라틴어 사전이나 미 관련
용어가 많이 들어있는 음악 미술사전 등을 뒤진다.

심지어 갖가지 별이름이나 동물이름 등을 나열하기도 한다.

예컨대 기아가 다음달 내놓을 초대형 승용차 이름인 "엔터프라이즈"는
해군 출신으로 이 회사 마케팅부서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전세계 군함의
이름을 모두 수배한 끝에 나온 작품이었다.

1차 후보작이 나오면 검토과정을 거쳐 2, 3차 후보작으로 숫자를 좁혀간다.

이 과정을 거듭해 마지막으로 남은 10개 정도를 회사의 중역회의에 제출,
5개 정도로 다시 압축한다.

물론 최종 낙점은 "톱"이 한다.

"톱"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출, 이름으로 결정된 경우도 있다.

예컨대 기아의 세피아와 크레도스는 김선홍 그룹회장 작품이다.

"차박사"로 불릴 정도로 차에 조예가 깊은 김회장은 차 이름에 대한 감각도
남다르다는게 기아 관계자의 설명.

세계적인 작명회사 등 외부기관에 용역을 줘 지은 예도 있다.

이 경우 보통 용역 수수료로만 수천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름을 정할때 고려되는 기준으로는 <>회사및 차의 이미지와 맞을 것
<>3음절 이내로 발음하기 쉬울 것 <>나쁜 의미가 연상되지 않을 것 <>상표법
에 저촉되지 않을 것(예컨대 "최고" "최우수" 등의 뜻을 가진 것은 안된다)
<>수출지역에서의 의미를 고려할 것 등이 꼽힌다.

이중 특히 수출을 고려해 차명을 짓는게 가장 힘들다.

현지에서의 뜻이 나쁜 의미이거나 심지어 현지에 등록돼 있는 비슷한 차이름
때문에 제소에 휘말릴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수용과 수출용의 차이름이 다르다.

예컨대 현대 "엘란트라"는 유럽에 수출될때 "란트라"란 이름으로 나간다.

영국 로터스의 엘란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엑센트"가 지역에 따라 "엑셀"이나 "포니"로, "쏘나타"가
"쏘니카"로, "크레도스"가 "클라루스"로, "라노스"가 "레이서"로, "씨에로"가
"넥시아"나 "헤븐"으로, "에스페로"가 "아라노스"로 나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차이름을 지을 때는 의미 또한 중요하다.

이 경우 자동차 3사의 독특한 취향을 엿볼수 있는데 현대는 주로 속도감을
부각시킨다.

엑셀(우수한), 프레스토(빠르게), 스쿠프(특종), 엘란트라(활기), 엑센트
(강조), 아반떼(전진), 쏘나타(빠른 템포의 악곡), 마르샤(행진곡) 등이
그런 경우이다.

기아는 개인적인 속성을 반영하는 브랜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프라이드(자부심), 아벨라(열망), 콩코드(조화), 크레도스(신뢰), 포텐샤
(잠재력), 엔터프라이즈(진취성 모험심) 등이 해당한다.

대우는 귀족적이고 이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름을 선호한다.

프린스(왕자), 브로엄(중세 유럽귀족들이 타던 유개마차), 임페리얼(황제),
살롱(사교장), 아카디아(이상향), 에스페로(희망), 라보(도전) 등이다.

차 이름은 수출을 감안, 주로 외국어로 짓지만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우의 준중형 신차 "누비라"가 대표적으로 이는 "세계를 누비며 활약한다"
는 뜻으로 지어졌다.

쌍용 "무쏘"도 코뿔소를 뜻하는 순우리말 "무소"를 세게 발음한 것이다.

< 정종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