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터진 "한보그룹 부도"로 인해 금융계
는 일대 판도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외부(정부)로부터의 빅뱅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로부터도 빅뱅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내로라 하는 은행들부터 한보 부도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제일은행이 1조1천1백77억원의 부실여신을 떠안은 것을 비롯, 산업(8천9백억
원) 조흥(5천억원) 외환(4천5백억원)은행 등에도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다.

제일은행의 경우 한보 부도에 따른 미수이자및 대손충당금 규모가 연간
3천5백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돼 벌써부터 올해 영업은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리딩뱅크를 자처하던 조흥은행도 성장가도만을 구가할수 없게 됐다.

내실있는 은행으로 알려졌던 외환은행도 경영에 균열이 생겼나고 있다.

이들 은행들이 한보여파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보의 덩치가 워낙 커 제3자 인수업체가 쉽사리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 은행들은 당분간 "우량 은행 대열"에서 제외되게 됐다.

그 결과 이번 부도폭풍에 휘말리지 않은 상업 한일은행이 반사적으로
우향은행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업은행은 이미 일찌감치(95년말) 자구노력을 완성한채 선두은행 탈환을
노리고 있던 터였다.

한일은행의 경우 작년 결산실적이 썩 좋은 것도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부실없는 은행"이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10년주기로 은행경영 서열에 지각변동이 생겨났었다"며
"한보사건은 그동안 수면하의 미진을 지표면의 격진으로 끌어 올려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점친다.

더구나 정부도 금융개혁을 조기에 가시화시킨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 22일 개최된 금융개혁위원회 첫 회의에서 올해말로 예정돼
있던 금융개혁작업 종료시한을 9월로 앞당긴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인수합병도 적극 검토할 것임을 빼놓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벌써 부실금융기관이 어디인지 분명해졌기 때문에 금융기관
통폐합문제를 일정보다 앞당겨 논의하는게 좋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보사건은 은행의 대출관행에도 대폭적인 변화를 점치게 한다.

은행들은 그동안 한보철강의 대출요청에 일방적으로 이끌려오다시피 했다.

대출심사고, 타당성조사고 제대로 했다는 흔적이 없다는 얘기다.

사태가 이까지 된데는 금융당국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대외신인도"란 알쏭달쏭한 용어를 써가며 유가증권 평가충당금 적립비율을
대폭 하향 조정, 은행들의 경영상태를 "장부상 흑자"로 만들어 놓았다.

때마침 막을 올린 "금융대개혁"은 대출심사장치와 같은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금융기관 통폐합이라는 대명제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한보사태는 금융빅뱅에도 불을 댕길 것 같다.

< 이성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