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과연 무얼 믿고 끝까지 버텼을까"

정총회장이 23일 오후까지 한보철강의 경영권 포기를 거부해 결국 부도라는
종말을 맞게 되자 재계에선 과연 그가 왜 고집을 피웠는지에 대해 설왕설래
가 많다.

일각에선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던게 아니냐는 설이 나도는가 하면
"설마 부도야 내겠느냐"며 베짱을 부렸다는 관측이 대두하고 있다.

또 한편에선 나름대로 필생의 역사를 다 이뤄놓고 이제와서 경영권을 자기
손으로 내놓는게 내키지 않았을 것이란 동정어린 분석도 나온다.

우선 첫번째 가능성인 "믿는 구석설"은 완전 빗나간 것으로 판명났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한보철강이 결국 최종 부도처리 됐기 때문이다.

이미 제일은행등 채권은행단은 2~3일 전부터 만약의 경우 한보철강을
부도내기로 하고 준비작업을 벌여 왔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는 정부가 정총회장으로 하여금 한보철강의 경영에서 손을 떼도록 하되
거부할 경우 부도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치권등 으로부터의 후원은 그저 정총회장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었던 셈이다.

두번째 정총회장의 "베짱설"은 첫번째 경우보다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정총회장은 부채가 5조원이 넘는 회사를 정부가 부도내긴 쉽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 정도의 부도사태는 단군이래 최대 규모인데다 수백개 하청업체들의
연쇄부도등 파장이 메가톤 급이어서 정부가 설마 부도를 내겠느냐는 판단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정총회장이 개인적인 미련 때문에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바다를 메워 6조원 짜리 철강공장을 자신의 손으로 지었는데 그걸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 했을 것이란 얘기다.

경영자로서 "자살"보다는 "타살"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총회장은 23일 밤 입장을 뒤집어 "주식포기 각서"를 써 경영권
포기의사를 밝혔다.

그룹 계열사 사장단의 설득에 못이겨 마침내 포기각서를 채권은행에
제출했다.

결국 정총회장이 정치권의 지원을 기대했건, 베짱을 부렸건간에 그의 이날
오락가락한 처신은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