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이 부도처리된 원인으론 무엇보다 한보가 철강산업을 너무 얕잡아
봤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검증도 되지 않은 신공법인 미니밀과 코렉스 설비를 너무 "과감하게"
도입한데다 자금난을 겪으면서도 무리하게 신규사업을 확대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점 등도 빠뜨릴 수 없다.

한보가 철강사업을 쉽게 생각했다는 것은 한보가 기존 업체와는 달리
단번에 연산 9백만t 규모의 "민간최대 제철소"를 건설하려 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포철은 장기저리의 해외차관을 이용해 금융비용 부담없이 대단위 투자를
했었고 인천제철 동부제강 동국제강 등 기존 업체들은 덩치에 맞게 소규모로
설비확장을 해왔다.

이에 비해 한보는 처음부터 지나친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최신공법을 택한 것도 한보의 발목을 잡았다.

한보가 도입한 박슬라브연주설비와 용융환원설비(코렉스)는 상용화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설비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큰데다 조업안정화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건
철강 문외한도 알수 있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한보철강이 당진제철소에서 생산해낸 열연코일등은 자연히 품질이
떨어져 판매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6월에는 열연코일 재고가 최고 10만t을 넘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
한다.

공장규모나 제조공법 모두가 "무리수"였다는 얘기다.

한보가 철강 투자를 앞잡아 본 만큼 자금조달 계획도 허황됐다.

애당초 별도의 자기자금 마련없이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5조원 규모의
대형프로젝트를 수행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한보가 처음 당진제철소 건설을 위해 책정한 투자자금은 2조7천억원.

그러나 실제 투입된 돈은 2배가 넘는 5조7천억원에 이르렀다.

공사비를 제대로 책정하지도 못하는 "주먹구구식 투자"였던 셈이다.

한보는 애초에 계획이 엉터리였던 만큼 공장 건설이나 영업망 확충보다는
불어만 가는 자금소요를 끌어대느라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공장 경영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여기다 철강경기마저 한보의 종말을 재촉했다.

당진제철소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국내외 철강
경기는 하강커브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당진제철소가 완공돼도 정상적인 가동과 영업이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은행들도 더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편에서는 한보가 이와 함께 유원건설과 상아제약을 인수하고 정보통신
분야에 신규 진출하는가 하면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사업에까지 손대는 등
사업다각화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점을 경영악화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제철소 건설에 동전 한 푼이라도 더 쏟아 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다른
사업부문에 눈으로 돌린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현금화되는 사업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부채이자를 갚기 위해 은행에
손을 벌리고 또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원리금 상환을 위해 다시 어음을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 속에서 한보의 부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셈이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