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업무계획에서 제시한 올해 공정거래정책을 보면 업계의
실상을 대폭 반영한 현실화의지가 읽힐 뿐 아니라 공정거래정책에 탄력성과
유연성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먼저 시장지배적사업자 지정 대상품목의 범위를 확대키로 한 것은 경제
여건 변화를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

지난해까지 적용된 지정요건중 매출액기준을 연간 5백억원 이상에서
1천억원이상으로 확대한 점을 들수 있다.

3백억원이던 매출기준을이며 5백억원으로 조정 했지만 여전히 대상이 많아
시장지배적사업자의 독과점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감시도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지고 지정된 사업자들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에
따는 것이다.

대기업그룹이 협력중소기업에 출자가능한 예외한도를 추가로 인정한 것도
실질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탄력적으로 반영한 부분이다.

경품류제공 규제대상에서 소기업을 제외키로 한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대로 잡아내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까다로운 규제로 분위기만 경색도게
하는 것보다 현식적인 기준을 가지고 단속의 실효룰 거두자 취지로 해석된다.

"촘촘한 그물로 피라미만 잡는다"는 항간의 지적을 의식, 그물코가 다소
엉성하더라도 큰 고기를 가려서 잡았다는 뜻인 셈이다.

"개방화" "무한경쟁"으로 일컬어지는 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변화도 감지된다.

그동안 시장지배적사업자 지정에는 예외가 없었다.

그러나 시장 점유율이 높더라도 가격담합이 없고 시장개방으로 인해
국내외 업체간의 실질 경쟁이 이뤄지는 품목, 예컨대 가전제품이나 컴퓨터
등은 예외로 하겠다는 방침이다.

외국기업들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등의 손발을 묶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각종 기구를 만들겠다는 점도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규제대상인 기업이 직접 경쟁제한 법령에 대한 개선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경쟁제한법령 신고센터" 설치나 "공정거래 모니터 제도" 도입등은
좋은 예이다.

그러나 공정위가 얼마나 자발적으로,또 의지를 갖고 이같은 변화를 추진해
왔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사실 경품류 제공한도에 대한 규제는 유통업체들이 벌써부터 지적해온
내용이다.

모기업으로부터 계열분리를 허용하는 기준에 불합리한 구석이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또 사실상 완전히 그룹에서 분리됐는데도 불합리한 기준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곳도 있다.

공정위의 발빠르지 못한 대처로 오히려 경제력 집중이 계속됐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불필요하고 비현실적인 기준들이 일부 완화되긴 했지만 보다 적극적인
변화가 아쉽다는 얘기다.

나아가 경제력집중억제에 지나치게 편중된 공정위의 기능 자체를 경쟁촉진
중심으로 축을 바꾸는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박기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