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의 한파로 썰렁했던 올 한해 재계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는 "세대교체 바람".

대기업 그룹의 창업 1,2세대들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하고 젊은 2,3세가
대권을 승계받는 자리바꿈이 그 어느해 보다 활발했다.

실제로 23일 정인영한라그룹 회장이 퇴임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30대그룹중
올들어 총수가 교체된 그룹은 현대 금호 두산 한보 코오롱을 포함해 모두
6개 그룹으로 늘게 됐다.

30대 그룹권에 들진 않지만 삼양그룹과 동양화학그룹도 올해 회장이
바뀌었다.

재계의 이같은 세대교체는 경영환경 급변에 대응할 새바람으로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신세대 회장들이 과연 "수성"을 넘어 불황 극복의 돌파구까지
마련할지 여부는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금년 재계 세대교체의 신호탄은 현대그룹이 쏘아 올렸다.

현대는 올해 벽두인 1월3일 정몽구회장이 숙부인 정세영전임회장의
뒤를 이어 제3대 회장으로 취임함으로써 총수교체의 거센 돌풍을 예고
했다.

같은달 29일엔 코오롱 그룹의 창업주인 이동찬명예회장이 아들인
이웅열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줬다.

이어 한보그룹의 정보근회장이 지난 3월10일, 금호그룹 박정구회장이
지난 4월7일, 두산그룹 박용오회장이 지난 3일 각각 신임회장에 취임했다.

재계의 총수교체가 가히 러시를 이뤘다.

이같은 총수교체의 공통점은 전임 회장들이 모두 건강한 상태에서
예상을 뒤엎고 전격적으로 그룹 경영권을 다음 세대에 넘겼다는 점.

한라그룹의 정인영회장은 수년전부터 휠체어 신세를 질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그룹 총수중 가장 많은 해외출장 기록을 갖고 있는 등 정력적인
경영활동때문에 그동안 2선 퇴진을 점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현대그룹 역시 정몽구회장이 자신의 회장 승계 사실을 발표 당일에야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회장 교체가 전격적이었다.

금호 두산 한보 코오롱 그룹의 경우도 회장 승계는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전임 회장 대부분이 활발한 기업경영을 벌이고 있던 중이어서 "뜻 밖"이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재계의 총수 세대교체가 예상보다 빨리,그것도 전격적으로 진행된 데는
최근 급박한 경영환경 변화가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예상밖으로 불경기의 골이 깊어지고 국내외 경쟁은 날로 격화되고 있는
위기상황을 극복할 대안으로 총수교체가 이뤄졌다는 것.

"연부역강"한 신세대 총수들에게 난국돌파의 임무가 맡겨졌다는 얘기다.

또 지난해말 불거져 나온 "비자금 사건"의 수사와 공판과정을 거치면서
대기업 그룹의 경영 투명성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참신한"
신세대 총수의 등장을 앞당긴 요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어쨌든 차세대 총수들이 전면에 나섬으로써 신규 사업진출등 "공격경영"이
재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현대그룹이 정신임회장 취임후 금융 항공산업 제철업 등 신규 업종
진출을 공식 선언한 것을 비롯,금호 코오롱 한보 등 대부분의 그룹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의욕적인 사업확장 계획을 내놓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얘기가 재계에 나돈 것도 이때부터다.

권위와 형식을 중시하던 옛세대와는 달리 합리적인 기업운영을
강조하는 신세대 총수들이 재계에 또 어떤 새바람을 불러 일으킬지
주목된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