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화학기계의 김형재사장(45)은 지난 92년 골프를 처음 배웠다.

기업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접대골프를 쳐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때까지 실내연습장에만 다녔을 뿐 필드에 나가본 경험이
없었다.

그는 먼저 실전을 익히기 위해 퍼블릭골프장을 찾아나섰다.

처음 해보는 골프가 잘될 턱이 없었다.

마침 팀중 일본인이 한사람 있었다.

50대 초반인 그는 처음 골프를 치는 김사장에게 거슬리지 않게 차분히
조언을 해줬다.

게임이 끝날 무렵 일본인에게 직업을 물어봤다.

일본인은 "분체기계공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김사장은 갑자기 귀가 번쩍 띄었다.

그는 당시 기술제휴를 위해 일본의 분체기계공장을 물색중이었다.

"그래요, 어느 분체기계회사입니까"

"나라(나량)기계입니다"

그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나라기계란 그가 마침 기술제휴선으로 합당하다고 생각하던 회사였다.

당장이라도 나라기계와 기술정보교환을 해야 할 판인데 그 회사임원을
이런 골프장에서 만나다니.

김사장은 속으로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했다.

그 일본인의 명함을 받고 보니 그는 임원이 아니라 나라기계의 사장이었다.

바로 이튿날 나라기계사장은 인천 남동에 있는 김사장의 신진화학기계공장
을 방문했다.

이어 한달뒤 양사는 기술제휴계약을 체결했다.

나라기계와 제휴하면서 신진화학기계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화학기계전문생산업체인 이 회사는 그동안 리액터 증류탑등 첨단화학
기계를 생산하고 있었으나 핵심기술에 있어서는 일본보다 약간 뒤지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나라기계와 기술제휴를 하면서 믹서의 터빈과 프로펠러등의 제조
기술이 한단계 올라서게 됐다.

여기에 자신감을 가진 신진화학기계는 자체기술개발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드디어 열교환기 애지테이터 고압탱크등 분야에서 선진국의 기술수준을
넘어서게 됐다.

신진의 기술수준이 급격히 올라서자 나라기계사장은 세계최고의 화공기계
회사인 일본 미쓰비시화공기와도 기술제휴를 맺을수 있도록 주선해 줬다.

이를보면 김사장은 골프 한번 잘친 덕분에 엄청난 혜택을 얻게 된듯 보인다.

그러나 평소 김사장을 자주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인간관계를 존중하는 것이 기업경영의 기초라고 생각하는 김사장의 경영
이념 때문이라는걸 확신한다.

실제 그는 한번 맺은 인연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10년전 창업멤버들과 지금도 함께 일한다.

이것 역시 김사장의 인간존중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사장은 성공하는 길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으로 인간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는 신조를 가졌다.

그는 기업인이 바뀌어도 기업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든 경영방향을 이러한 기저에서 판단한다.

신진화학기계가 인천 남동에 새 공장을 지을때도 그랬다.

그동안 애써 적립한 돈으로 인천 남동에 1,800평의 공장부지를 확보하긴
했으나 공장을 지을 자금이 없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우선 허름한 공장을 지어 이전을 한뒤 회사형편이
나아지면 공장을 보강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김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돈은 없지만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이 공장을 완공하게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인천 남동공단의 신진화학기계공장을 가보면 누구나 깨끗한 환경에 놀라게
된다.

이 회사는 다른 공장과 달리 회사둘레에 많은 나무가 둘러져 있고 환경이
매우 깨끗하다.

이곳에서 세계최첨단 수준의 각종 화학기계가 주문 생산된다.

< 이치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