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피보험자인 남편의 서명동의없는 부인의 생명보험 계약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리자 5일 생명보험사마다 자신의 보험계약 유효여부를 확인하려는
문의전화가 쇄도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생보사들은 "이번 판결은 계약자가 병력통보 등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있는데다 피보험자(보험의 납입)와 보험계약자(보험료 수익자)가 다른 특수한
케이스여서 보험금을 주지 말라는 취지였다"며 "하지만 일반 가입자가 비록
자필서명을 하지 않고 보험에 들었더라도 고지의무를 지켰다면 불이익이
없다"고 설명했다.

<> 판결요지와 소송경위

=양모씨는 지난 94년 7월 교보생명의 무배당 21세기 암치료보험(보장성)에
남편을 피보험자로 가입했다.

하지만 부인 양모씨는 보험가입 2년전부터 남편이 만성위염치료를 받아왔다
는 사실을 숨긴 것으로 교보생명의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같은 행위는 보험계약 해지사유인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된다.

하지만 보험청약서상의 고지사항란을 보험모집인이 양씨 대신 쓰는 바람에
법원에서 이를 고지의무위반으로 보지 않았다.

양씨는 또 보험가입후 3개월안에 암진단을 받으면 암보험금을 주지 않는다는
보험약관을 교묘히 이용, 가입후 3개월 3일만에 남편에게 위암확정 진단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은 재판과정에서 고지의무위반을 걸수 없어 상법상 피보험자의
서명동의가 없으면 계약이 원인무효가 된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이 이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양씨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양씨 입장에선 보험금 수령의 꿈은 깨지고 납입보험료 원금에 1년정기예금
금리(연9%)를 곱한 금액만 돌려받을수 있게 됐다.

<> 교보생명의 해명

=이번 사건은 단순히 암치료비 1,600만원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은 아니였다고
교보측은 밝혔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가입(보험용어로 역선택)을 막기 위한 법적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상법은 생명보험의 경우 이같은 보험의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을 방지
하기 위해 반드시 피보험자의 자필서명을 받아야 계약이 유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영업 관행상 부인이 설계사인 친구의 부탁으로 남편의 동의없이
생명보험에 드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생보사들은 "계약자와 피보험자를 똑같이 남편명의로 하면서 남편의 자필
서명이 없더라도 법률상 혼인신고를 했고 주민등록상 동거하면 보험금을
지급해온 게 관례"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앞으로 보험모집인에게 반드시 계약자의 자필서명을 받도록
철저히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생보업계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계약의 ABC이라고 볼수 있는 자필서명도
없이 벌이는 무리한 연고계약 경쟁을 자제할지 두고볼 일이다.

<정구학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