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00년 1월 1일 0시.

세계 컴퓨터는 바로 이시각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

컴퓨터상의 날짜가 전날의 "31/12/99"에서 "01/01/00"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프로그램상의 모든 날짜를 1900년 1월 1일로 인식한다.

화려한 21세기의 개막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는 20세기를 시작하게되는
셈이다.

컴퓨터가 연도를 잘못 읽게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은행등 금융기관은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분야.

지난 1986년 특정인에게 25년 장기주택자금을 대출해주고 매년 원리금을
상환하는 S은행의 경우를 가정해 보자.

S은행의 컴퓨터는 2000년을 1900년으로 인식하고 원리금 상환액을
결정하게 된다.

정확한 상환금액이 산출될리 없다.

자칫 채무자가 원리금상환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아니면 은행은
대출근거도 없는 원리금을 받은 꼴이 될수도 있다.

유사한 문제가 청구서 발행, 급여 계산, 자동차 할부등에서도 발생할수
있다.

금융기관 뿐만 아니다.

국세청 전산프로그램은 1900년의 납세액을 산출하게된다.

2000년 1월 1일에 출생신고하는 아이는 이미 100살난 노인으로 계산된다.

CTS(신문전산제작시스템)를 통해 발행되는 신문은 2000년 1월 1일자
신문을 1900년 1월 1일자로 인쇄, 발간하게된다.

거의 대부분의 DB가 무용지물이 될수도 있다.

이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60, 70년대 세계 프로그래머들이 메모리양을
아끼고 입력시간을 줄이기위해 날짜 연도를 네자리숫자가 아닌 두자리숫자로
줄여 쓴 때문이다.

1972년을 간단히 72로 표기한 것이다.

두자릿수 연도표기는 최근까지도 관행화돼 대부분의 프로그램에
적용되고있다.

2000년을 3년여 남겨놓은 상태에서 이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이 불을 꺼야한다고 아우성이다.

미국의 애트팩 인텔레콘등의 전문업체가 각각 "시스템비전 2000", "인터솔
2000"이라는 이름으로 시제품을 내놓았다.

60,70년대 컴퓨터업계의 맹주였던 IBM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2000년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너무나 조용하다.

2000년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다는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설마 금융기관이 그런일로 문을 닫을까, 그전에 무슨 수가 생기겠지"라는
안일한 의식만이 널려있다는 얘기이다.

일부 시스템통합(SI)업체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있지만 아직
프로젝트 기획단계에 머물러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설마가 사람잡는 일이 발생할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아직 세계 어느 기업도 두자릿수 연도표기를 완벽하게 네자릿수로 자동
전환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일부 기업이 2000년 문제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내놨지만 이들도 수작업의
도움을 얻어야 연도를 변경할수 있는 수준이다.

미국의 컨설팅업체인 가트너그룹은 이와관련, "지금 추세대로 개발이
이뤄진다면 오는 2000년 세계 컴퓨터 DB의 30%정도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했다.

완벽한 연도표시 전환장치가 개발되지 못한다면 사람이 매달려 두자릿수
연도를 네자릿수 연도로 바꿔야하나 이는 불가능한 얘기이다.

업계 관계자는 "누군가 2000년 문제 해결책을 개발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국내기업은 개발에 성공한 외국업체에
어마어마한 편승료를 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트너그룹은 "2000년 사업"시장규모가 6,000억달러라고 분석하고있다.

< 한우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