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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계엔 불안의 계절풍이 분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 때만 되면 터지는 행장들의 구속사건은 오버랩된다.

정부는 합병전환에 관한 법률로 으름장을 놓고 실물경기의 위기는 금융계
에도 찬바람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상업은행 정지태 행장에겐 요즘이 불안의 계절만은 아니다.

은행은 부실의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개인적으로는 상복이 터져 있다.

지난 10월29일 저축의 날엔 은탑산업 훈장을 받았고 3일엔 한국능률협회
로부터 최고경영자 대상을 받았다.

오는 토요일(7일)엔 한국천주교회가 주는 가톨릭 실업인대상을 또 수여할
예정이다.

금융의 낙후성이 거론되는 요즘 그의 경영철학이 더욱 돋보인다.

직원들이 말해주는 그의 별명은 "불통"이다.

"인사청탁이 불통이요 대출 압력이 불통이며 각종 편법이 불통이라서
3불통이다"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그의 경영철학을 들어본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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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상복을 축하합니다.

은행장 되신지가 이제 3년 남짓인데 취임하면서 결심한 것을 모두
달성했습니까.

"은행을 "살리고 말테다"는 모진 각오를 했더랬습니다.

한양 부실, 혜화동 지점사건 등 금융사고가 났다 하면 우리은행이었습니다.

낮은 생산성, 직원들의 땅에 떨어진 사기 등 문제투성이였지요"

-임직원들이 잘 따라와 주던가요.

관료주의적인 분위기도 만만찮았을 텐데요.

"직원들이 모이는 곳은 무조건 찾아갔지요.

우리 한번 멋지게 해보자고 설득했지요.

매주 토요일에는 지점을 순회했습니다.

사실 문제를 몰라서 못고치는 것은 아니쟎아요.

우리은행의 문제들은 너무도 분명했고 해법도 간단했습니다.

원칙적인 업무처리, 신상필벌에 입각한 인사, 이 두개가 전붑니다.

결국 우리는 해냈읍니다"

-상업은행은 지난 93년 시중은행중 처음으로 당국에 자구계획을 제출하기도
했는데요.

상업증권 매각건은 어땠읍니까.

나중에 나온 말이지만 상업증권을 매입했던 제일은행측이 바가지를 썼다는
말도 많았는데요.

"개인집을 사고팔때도 사는 측이나 파는 측이 나름의 평가를 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상대가 우리와 같은 은행인데 바가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로서는 꼭 팔아야했던 것이기 때문에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짐을
덜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겠지요.

어떻든 그결과 우리는 5년기간의 자구계획을 2년반만에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업무 다각화는 어떻습니까.

보험이나 증권은 은행들이 언제라도 진출해야할 분야일텐데요.

당장 급하다고 팔아버리면 나중에 더 큰 돈이 들지 않겠읍니까.

"자회사도 위험자산입니다.

자회사를 많이 거느리다 잘못됐을 경우 그 리스크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일반 대기업을 보더라도 자회사의 경영이 좋지 않아 망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이제까지는 은행이 안쓰러졌기 때문에 "은행은 괜찮을 것"이라는 인식이
많은데 위험한 생각입니다.

기본은 모회사지요.

우선 산모가 건강해야 튼튼한 아이가 태어난다고 볼수 있죠"

-상업은행의 경영은 완전히 정상화됐습니까.

또 질의 경영을 추구하다 보면 리스크를 회피하게 되고 시장점유율은
떨어질텐데요.

"물론 우리 은행이 선진국 수준으로 좋아졌다고 할수는 없읍니다.

국내의 경쟁 은행과 비교해서 정상화됐다는 의미지요.

예를들어 BIS비율도 올라갔고 부실채권은 줄어들었습니다.

콜머니에서 콜론으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은행부실은 계속 골치거린데요.

부실의 근본원인이 뭡니까.

"경험으로 봤을때 대형사고는 외형위주경영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익은 생겨나지 않는데 물거품같은 외형경쟁을 할순 없지 않습니까.

또 오더대출도 큰 문젭니다"

-조흥은행과 비기면 어떻습니까.

조흥은행은 소매금융을 확장하면서 리딩뱅크가 됐다고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데요.

"조흥은행도 과거엔 부실이 무척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회생하는데만 10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겠죠.

거액 부실여신이 많이 생기니까 소매금융으로 눈을 돌리고 점포전략도
거기에 걸맞게 다시 짰던 것 같고 그것이 앞서나가는 계기가 됐던 것이죠"

-혹시 국내외에 벤치마킹하는 은행이 있습니까.

"미국 유럽 등은 경제여건이나 문화 은행업의 관행 등에서 우리와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일본의 상와은행을 늘 염두에 두었읍니다.

전산화 사무자동화는 물론이고 점포정책 등에서 열심히 벤치마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은행들도 상당히 발전했다고 봅니다.

오는 98년이면 은행산업도 완전 개방되겠지만 그리 염려하지는 않습니다"

-손행장 구속건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행장자리가 마치 지뢰밭 같은 느낌도 줍니다만 원인이 뭡니까.

"같은 금융인으로서 당혹스럽고 부끄러움도 느낍니다.

사회에선 금융인을 다 비슷하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점에서 무어라 할말이 없읍니다"

-서울은행의 경우 내부승진 행장에 대한 한계론도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요.

행장 선임절차나 이사회 문제는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지방도 자치단체장을 자기 지방출신으로 뽑는 실정이고 보니 은행에서도
자행 출신아니면 안된다는 생각들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2~3년이면 이같은 풍토도 크게 바뀔겁니다.

경영을 맡겨본 결과 "안되겠구나" 싶으면 자연스레 외부영입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대기업을 비롯한 일부 사기업은 벌써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머지않아 망하는 은행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오셨는데 언제 어떤 은행이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는지요.

"다른 은행실상을 구체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역시
2~3년안에는 그런 사태가 생길 것으로 봅니다.

다만 망한다는 것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문제겠죠.

기업의 경우 흑자도산도 있고 판매가 저조해 부도나기도 하죠.

이를 유추해 은행에도 적용할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상업은행의 국제화는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습니까.

일본 은행들을 보면 국제화한다고 해서 해외로 나갔다가 현지비즈니스보다
일본 관련 비즈니스만 주로 해왔는데요.

"다른 국내은행과 마찬가지로 상업은행도 아직 한계를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국내기업 관련 비즈니스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지요.

그러나 요즘들어선 태국 인도네시아 등 이머징마켓에서 꽤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마치 선진국 은행들이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은행 해외영업 부문에서 연4년동안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일선 부장으로 돌아가신다면 어느 부서에 근무하고 싶습니까.

"은행들어와서 30여년간 모든 부서를 다 거쳐봤습니다.(수첩을 내보이며)

저는 특히 계를 옮겨 다닐 때마다 모두 기록해왔습니다.

(실제 그의 수첩에는 그가 입행이후 옮아 다녔던 계와 부서의 이름과
발령일자 재직기간들이 3페이지에 걸쳐 잔글씨로 빼꼭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어떤 부서라고 말하면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불만을 가질 것
아닙니까"

-뱅커(은행원)을 선택하신 것에 만족하십니까.

또 경영자로서 존경하는 인물이 있읍니까.

"만족하고 있읍니다.

존경하는 경영자는 역시 역대 행장들이죠.

제 옆방에 역대 행장분들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그중 몇분은 제가 늘 마음에
새깁니다"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에서는 요즘 은행제도 개혁이 한창인데요.

국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대해서는 반대입니까 찬성입니까.

"산업자본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모 지방은행의 경우 편중 여신사례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읍니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는 기업측의 경영이 어려울때 그 여파가 은행으로
전가될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상호신용금고를 보더라도 주로 어떤 금고들이 어려운지 금방 알수 있습니다.

오너들이 있는 금고들이지요.

기업들은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은행을 지배한다고 가정해보십시요.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겨날 겁니다.

-3년남짓 재임하셨는데 기록으로는 중임하시는 걸로 돼 있습니다.

은행계 처음으로 3연임 하실 겁니까.

"그것은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요.

개인적으로는 우리은행이 과거의 영화 다시말해 리딩뱅크 자리를 재탈환
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가 지금 할일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