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이 또 구속됐다.

뉴스라기보다는 연속극.

부패혐의로 검찰에 불려온 인사들의 표정도 삼진당한 선수처럼 "그냥
계면쩍을"뿐이다.

은행장 자리는 이미 가막소로 가는 지정석이다.

그러고도 서로 행장이 되겠다고 아우성이니 이상한 일이다.

"왜 그랬대"라기 보다는 "후임은 누굴까"가 은행원들의 관심사항이다.

"모씨는 지금 화장실에서 웃고 있겠지"는 식의 반응은 차라리 코미디다.

같은날 서울시 공무원이 구속됐고 며칠전에는 버스 비리로 두명의 관리가
구속됐다.

그앞에는 국방장관의 이름이 올라있고-.

줄줄이 꿰어 들어갔지만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명단"에 오를 것이다.

불명예는 하루면 잊혀지고 지뢰가 터지는 것은 재수소관이다.

변치 않는 것을 법칙이라고 한다면 부패야말로 엄연한 법칙이다.

특히 금융은 부패의 지뢰밭이다.

"금융은 유통이다"고 큰소리쳤던 장영자의 법칙이 살아있는 동안 부패는
필연이다.

지점장들의 영업 방식이 불변이고 대출 결정 과정이 불변이며 은행장을
정하는 방식도 아직은 불변이다.

정부가 행장을 결정하고 대출선에 영향을 주며 정치인들의 대출청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부패는 필연이다.

행장이 되는데 운동이 필요하고 자리를 유지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면 부패는
예외라기 보다는 일상사다.

그러니 줄줄이 엮어 넣어도 아무도 승복하진 않게 된다.

대출받는데 기름칠이 필요하고 연말을 앞둔 기업인들이 금융기관에 돌릴
선물을 고민하고 있다면 누구를 그자리에 앉혀도 마찬가지다.

대출이 서비스가 아니라 권한인 동안 부패는 필연이다.

며칠후면 막이 오를 송년모임들에서 은행장이 기업체 사장에게 상석을
요구하고 또 그 윗자리에 관리들을 모신다면 이는 부패의 풍경화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은 근절되지 않는 부패로 책상을 치겠지만 중소기업가들은 변치 않는
맑은 금융관행에 발을 구르고 있다.

< 정규재 경제부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