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엔 움츠리고 있는게 상책이다"

본지가 조사한 30대그룹의 내년도 사업계획에서 읽을 수 있는 대기업들의
심리는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니 매출증가율을 무리하게 높게 잡을 수 없고 매출
목표를 낮게 잡으니 굳이 설비증설을 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 사업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에 투자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도 투자위축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택한 전략은 외형성장보다는 내실을 기하자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그룹비서실에서 내려온 사업계획 작성
지침부터가 예년과는 달라졌다"고 말한다.

즉 예년에는 우선 매출목표를 세우고 지출예산을 잡은 후 이익을 추정하는
방식이었던데 비해 올해는 이익목표를 먼저 세운 후 이에 맞추어 매출과
지출예산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각 기업들의 사업계획은 긴축적이 될 수 밖에 없고 특히
투자의 경우 수익성을 철저히 따져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긴축분위기는 요즘 각 그룹들이 주력하고 있는 사업구조 조정으로
이어진다.

한정된 투자재원을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수익성이 낮은
분야에서는 과감히 손을 뗀다는 전략이다.

현대그룹의 경우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정리해 그룹전체의 채산성을
개선한다는 방침아래 중공업 전자 종합목재 등이 영위하고 있는 일부 한계
사업을 중소기업에 넘겨주기로 했다.

삼성그룹은 사업별로 수종사업 전략사업 한계사업 철수사업등으로 분류,
수종사업등에 대해선 자원을 집중하되 한계사업등은 중소기업에 이양하거나
폐쇄할 계획이다.

LG도 최근 구본무회장이 과감한 사업구조조정을 지시한 이후 "집중과 철수"
라는 전략에 의한 구조조정을 추진중이다.

각 그룹들이 투자를 집중시킬 분야를 보면 현대의 경우 자동차 반도체
우주항공 석유화학 정보기술 등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방침이며 삼성은
자동차분야에 대한 계속투자와 정보통신 우주항공 유통 등을 주력투자
분야로 선정하고 있다.

또 LG그룹은 당진 민자화력발전소 사업자로 선정됨에 따라 에너지사업분야
와 정보통신분야에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군산자동차공장 준공으로 자동차분야의 국내설비확장을 마무리한 대우는
기존 공장들에 대한 설비합리화나 R&D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대기업들은 국내에서의 설비확장에 이처럼 소극적인 것과는 달리
해외투자에는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선경의 경우만해도 전체 투자규모는 올해와 같은 2조5천억원으로 잡고
있지만 해외투자는 올해의 3천억원에서 8천억원으로 늘려잡고 있다.

대기업들의 이같은 경향은 두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는 내년의 세계경기가 국내와는 달리 대체로 올해보다 호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투자환경이 국내보다는 해외가 훨씬 양호
하다는 점이다.

이와관련, 전경련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갈수록 꺾이고 있는 반면 해외에서는 갖가지 투자
유인책을 제공하며 기업들을 불러모으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한 투자부진과 이로 인한 경기둔화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
했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