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산업은 올해 15억원의 순익을 낼게 확실하다.

3년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셈이다.

매출도 1,800억원으로 300억원이 늘어난다.

생활용품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는 판이하다.

세제분야 간판업체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한 것이다.

안용찬사장이 사령탑에 오른지 1년여만이다.

장영신 그룹회장의 사위로 약관 36세에 뿌리기업을 맡은 안사장.

남들은 젊은 나이에 CEO가 된것을 부러워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괴롭기만 했다.

지난 93년 유니레버사와 결별하면서 시작된 부진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알짜기업"으로 통해온 예전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격적 경영밖에 없다"

안사장은 "불황일수록 광고를 늘려라"라는 마케팅이론에서 그 해법을
찾아나섰다.

우선 "빅브랜드" 전략을 짰다.

디자인부서 사원 전원을 선진국에 연수시켰다.

"미시스파크 주부모델선발대회"도 열었다.

대학교수들과 제품을 공동개발 생산했다.

이를 바탕으로 "트리오" "스파크" "하나로 샴푸" "포인트"등 얼굴상품들을
해당분야의 1위브랜드로 키웠다.

인사의 틀도 바꾸었다.

팀제를 도입했다.

능력위주로 인재를 발탁했다.

직접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결재를 했다.

영업부서에 관련예산을 모두 맡겼다.

세계적인 MBA명문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닦은 실력을 유감
없이 써먹었다.

이 처방은 즉효를 냈다.

사원들이 젊은 사장을 믿고 따르기 시작했다.

안사장이 애경산업을 3년간의 부진에서 멋지게 탈출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국내외 기업들과의 공동물류회사 설립, 외식산업 신규참여, 제조업체들
과의 전략적 제휴, 동남아현지세제공장건설등으로 공격적 경영을 가속화
하겠습니다"

안사장이 요즘 국내외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최근 중국을 다녀왔다.

심양 북경 대련 곤명등에 들러 현지시장을 점검했다.

강택민국가주석도 만났다.

8박9일동안 미국 IBM본사에서 정보화 관련연수도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보대학원에서 "만학"에 열중하고 있다.

젊음의 패기에다 실력까지 겸비한 경영인으로서 애경을 세계수준의
생활용품회사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 김경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