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기업은 개도국기업으로서 이런 저런 혜택을 누려온게 사실이다.
마치 골프에서 초심자에게 핸디캡을 잡아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선심을 기대할 수 없다. 선진국기업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게임에 임할 수 밖에 없다"

대우그룹의 한 임원은 한국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이 기업들에
의미하는 바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의 지적대로 한국의 OECD가입은 국내기업에 공정한 경쟁 룰을 지키는
국제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얼핏 듣기에 이 과제는 그리 어려울게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기왕에 우리 기업들이 지향해온 세계화라든지 정도경영 같은 명제들과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결코 만만치 않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OECD가입의 영향이 UR타결의 영향보다 클 것(32.7%)이라는 응답이 적을 것
(20.4%)이라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면 기업들은 "OECD가입"이라는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인가.

우선 선진국 수준의 공정거래규범하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체력을 다져야
한다.

OECD회원이 되고 나면 국내 특정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나
보호수단은 크게 제약된다.

예를 들어 국내기업만 영업을 하고 외국기업에는 영업을 못하게 하는 각종
협회의 시장진입장벽이 규제되고 중소기업고유업종 같은 보호막도 걷어내야
한다.

수입선다변화제도처럼 차별적인 국제거래제도도 없애야 하고 우리 물건은
꼭 우리 배에 실어야 하는 국적선이용제도도 마찬가지다.

경쟁의 문제와 함께 또하나 우리 기업들에 주어지는 과제는 국제적 협력의
문제다.

선진국클럽의 일원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협력의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철강처럼 만성적으로 공급과잉인 부문이 생기면 세계전체의
수급조정을 위해 국내설비증설을 자제해야 하고 다른 나라 기업을 불리하게
하는 정부지원은 기대도 말아야 한다.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OECD가입은 기업들에 부담을 준다.

환경보호관련규정을 지키자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내기업들은 배출가스 대기 수질 등 환경기준을 선진국수준으로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인접국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자동차 배출가스도 선진국수준까지 줄여 나가야 하고 환경오염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일부 화학원료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생산시스템도 바꾸어
가야 한다.

OECD가입으로 가속화될 금융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비책도 요구된다.

자본자유화가 실질적으로 완성됨에 따라 국내 기업도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의 대상으로 노출될 것이다.

이에 대비해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본자유화는 금리와 환율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적절한 헤징(위험회피)수단의 사용으로 환리스크 금리
리스크를 극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금융환경의 변화가 기업들에 부담만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내기업의 자금조달 경로가 다양해지고 해외로부터 싼 자금을 이용할 수
있어 금융비용이 절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외국인 직접투자 활성화는 국내의 산업발전과 경쟁력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같은 "기회"도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기회를 활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금융자율화에 따라 자금배분 결정권이 정부로부터 은행 신용기관
등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신용평가가 중요해질 것이고 이에따라 높은 평점을
유지하기 위해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히 요구된다.

또 앞으로 늘어날 해외사업수행을 위해 국제신용평가기관과 국제개발금융
기관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이루어질 때 한국기업은 비로소 당당한 OECD기업으로 대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