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운행하는 화물차는 "반쪽차"다.

열에 아홉은 목적지를 왕복하는 동안 절반만 화물차의 구실을 한다.

공장에서 물건을 싣고 나와 부려 놓은 다음 대부분 빈차로 돌아간다.

그나마 물건을 실었을 때도 "반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문량이 적을 때는 짐칸의 반만 싣고 달리는 때도 다반사다"(S상사
K상무).

떠날 때는 반만 채우고 돌아올 때는 빈차로 오니 언제나 "절반의 쓰임새"
밖에 없는 "반쪽차"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화물차가 제 구실을 못한다.

길이 막혀 늦고 빈차로 달리며 공친다.

막힌 길을 뚫는 것이야 돈이 들어가 쉽지 않지만 빈차로 뛰는 것에 대한
해법은 간단하다.

꽉꽉 채우면 된다.

내물건 남의 물건 가리지 않고 가득싣고 달리게 하면 그만이다.

일종의 "화물차 풀(pool)"이다.

그러면 운용하는 차도 줄어들고 자연히 물류비용을 낮출수 있다.

각 업체가 손을 잡고 서로 상대업체의 화물차에 "합승"하는 물류공동화만
되면 문제는 풀린다는 얘기다.

높은 물류비에 허덕이는 국내업체중에서도 이 방법을 이용해 벽을 넘어
보려는 기업이 최근 하나 둘 생기고 있다.

동원산업 삼양사 애경산업 대한통운 등이 각사의 제품을 취급하는
물류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고려당 풀무원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엑소후레쉬"란 물류회사를 공동으로
차렸다.

회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일제당은 동양나일론 스파클 동신제지 등과
협약을 맺고 공동배송을 하고 있다.

"물류공동화를 할 경우 최소 물류비용의 30%는 절감할수 있다"(동원산업
김종성 차장)는게 주된 이유다.

그러나 "물류공동화가 물류부담을 줄일수 있는 좋은 방법인 줄 알지만
현실적으로 시행하기가 어렵다"(P전자 L사장)는게 대부분 업계의 생각이다.

국내 업체중 작년말 현재 물류공동시스템을 운용하는 회사(9.7%)도 적지만
실시를 고려하고 있는 업체(12.1%)도 많지 않다(대한상의)는데서 엿볼수
있다.

나머지는 자체 집배송을 고집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물류기반 시설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꼽을수
있다.

물류공동화를 위해선 많은 업체가 함께 쓸수 있는 대형 창고가 곳곳에
있어야 한다.

규모뿐 아니라 한꺼번에 쌓이는 여러 업체의 물건을 쉽게 분류할수 있는
자동화설비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대형 첨단 물류센터가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업체중 절반이 넘는 회사(54.0%)들이 물건을 쌓아 놓을 곳이
모자란다고 호소하고 있다(대한상의 기업물류관리실태 조사보고 95).

임대창고를 쓰려고 해도 61.9%가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함께 물건도 보관하고 차도 같이 쓰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장소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

그렇다고 비싼 땅값 물고 공동창고를 짓기는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가"
(K상무).

하고 싶어도 현실적 여건이 따라주질 못한다는게 업계의 주장이다.

또 라이벌업체간 경쟁심리도 물류공동화를 확산시키지 못하는 한 요인이다.

"영업비밀이 새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할 수가 없다"(L그룹 K이사)는
우려다.

더구나 경쟁심리는 막상 물류공동화를 실시해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까지 작용한다.

국내 7개 시멘트업계가 경남 부곡에 만든 물류기지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곳엔 현재 각 업체가 지은 13개의 사일로가 있다.

이중 절반은 사실상 비어 있다.

물류기지를 함께 세우기는 했지만 물류공동화로 이어가기는 커녕 창고짓기
경쟁을 벌인 것이다.

부곡지역에서의 유통물량을 감안할 때 7개 정도면 충분한 사일로가 13개나
세웠졌고 2백억원이상을 과잉투자한 꼴이 됐다.

그렇다고 경쟁업체끼리 물류공동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자동차업계가 좋은 예다.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완성차업체 11개사는 지난 93년 공동물류회사를
만들었다.

작년엔 협력범위를 단순 수송에서 공동하역과 선적으로 넓혔다.

올들어서는 공동해상수송까지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막상 시작해 보니 이득이 많고 그래서 공동물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판매는 경쟁 유통은 공동"이란 이 회사의 캐츠프레이즈가 나날이
더 선명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한 일을 한국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해법이 같다면 답도 같을게 분명하다.

다만 얼마나 적극적으로 달려드느냐 하는 의지가 문제다.

문제를 읽기도 전에 포기한다면 정답이 나올리가 없다.

반쪽차를 완전한 차로 만들어 경쟁력만 높아진다면 적과도 동침할수
있는 것 아닌가.

< 정리=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