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제 여성의류 한벌 수입하는데 10만원정도 듭니다.

물론 부대비용까지 포함해서죠.

이 옷을 20만원 받고 백화점에 넘깁니다.

백화점에서는 부르는게 값입니다.

50만원도 부르고, 1백만원도 부르고.

그래도 없어서 못판답니다.

이걸로만 보면 지금이 불경기인지 도무지 실감할 수 없습니다"

외국의류를 수입판매하는 오퍼상 김모씨의 얘기다.

불경기라는 요즘도 과소비열풍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실제가 그렇다.

올들어 지난 7월까지 모피의류수입은 작년동기보다 326.6%나 증가했다.

승용차수입도 78.1%증가했고 골프용구와 화장품 수입도 각각 68.8%와
48.5% 늘어났다.

"사치성 소비재수입이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소비열풍은 궁극적으로 금리의 상승 압력요인으로 작용한다.

수입이 빤한 마당에 소비지출이 많으면 저축률은 아무래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저축률이 낮아진다는건 곧 자금공급여력이 줄어든다는걸 뜻한다.

그러면 자금초과수요는 해소되지 않는다.

돈이 부족한 만큼 금리는 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과소비 또한 금리국제화를 가로막는 주범이다.

"저수지에 물이 흘러들어오지 않는데 아무리 수로를 바로 잡고 물을
아껴쓴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그런 상황에서 수위를 아무리 잘 조절한다해도 농민들의 수요를 어찌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저수지에 물이 끊임없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장치 마련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금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저축증대를 통한 초과공급상태를 만들어야만 금리국제화가
가능하게 됩니다"(김경중 대우경제연구소연구원)

이는 대만의 경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91년-95년동안 대만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7%에 달했다.

우리나라(7.5%)와 비슷한 수준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도 3.8%(우리나라는 6.2%)나 됐다.

그러나 대만의 시장금리는 연 8.1%(우리나라는 연 14.9%)에 불과했다.

흔히들 말하는 명목균형금리(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 대만의 경우는
연 10.5%)보다 2.4%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높은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이 계속되는한 금리를 낮추는건 요원하다는,
그래서 "고성장-고금리경제학"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국내풍토를
무색케 하고 있는게 바로 대만이다.

이처럼 대만이 "고성장-저금리"라는 기적을 연출해낼 수 있었던 것은
투자율을 웃도는 높은 저축률이 바탕이 됐다는게 한은의 분석이다.

"지난 80년대 대만의 평균저축률은 32.9%로 투자율(22.8%)을 10%포인트
이상 웃돌았다.

자금의 초과공급상태를 유지한 것이 한자릿수 금리를 정착시킨 요인이다"
(이강남 한은조사제1부장)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만과는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80년대만해도 투자율을 상회했던 저축률은 90년대들어 투자율을
밑돌고 있다.

작년 3.4분기 31.9%에 달했던 도시가계저축률은 지난 2.4분기엔 26.3%로
5%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개인금융저축률도 30%밑으로 낮아졌다.

반면 가계소비증가율은 작년 4.4분기부터 GNP(국민총생산)증가율을 웃돌고
있다.

투자율은 30%대중반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데 저축률은 낮아지고 있으니
자금초과공급과 금리하락을 기대하는건 무리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이 "저축은 미덕"에서 "소비는 미덕"으로 바뀐
원인은 여러가지다.

재산소득증가와 임금상승 등으로 가계의 구매력이 확대된데다 가계대출
및 신용카드 등을 통한 소비자신용공급이 늘어났으며 과시적 소비행태가
확산되고 있는 탓(한국은행분석)이다.

실제 지난해말 현재 20대와 30대가구주의 승용차보유율이 각각 41.2%와
47.7%에 이르고 신용카드해외사용액이 지난 1.4분기동안 84.8%나 증가하는
등 우리의 소비행태는 가히 폭발양상을 띠고 있다.

따라서 가계의 저축증대와 건전한 소비문화정착 등을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하는게 금리하락을 위해 중요하다고 한은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수는 없다.

궁극적으론 저축유인동기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인플레율을 낮추고 실물경제를 안정시켜 돈이 저축에 몰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대만의 경우 지난 81년부터 90년까지 소비지물가상승률은 3.1%(우리나라는
6.4%)에 불과했다.

은행대출금리가 연 2.7%에 불과한 일본도 인플레율은 2%대에 그치고 있다.

대만은 특히 토지의 공개념인식이 확립돼있어 금융자산이외의 대체투자
수단이 많지 않다.

이렇게보면 "저축증대를 통한 금리하향유도"란 과제도 결국은 정부의
몫으로 남겨진다.

정부만이 물가와 실물부문을 안정시키는 바탕위에서 저축유인수단을
강구할 수 있어서다.

지금은 "저축은 미덕"이라고 강조하며 국민의 애국심에만 호소하기엔
소비자의 의식수준이 너무 높아져 있다.

< 정리=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