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C지정이후 처음 열린 한미통신협상은 서로의 기존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측은 한국정부가 한국내 민간통신사업자의 장비구매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자고 요구하는 반면 우리는 정부가
민간통신사업자의 장비구매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이를 보장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측은 우리 정부가 새로운 통신사업자들에게 국산장비 구매를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이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국산화등을 통해 미국의 통신장비업체가 국내시장에 진출하는데
걸림돌을 만들고 있다는 이유때문이다.

이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은 분명하다.

미국측의 요구는 무리한 것으로 절대 들어줄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민간통신사업자의 장비구매에 간섭할 의사도, 또 그럴
권한도 없기 때문에 불간섭을 보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입장이다.

우리정부는 이와함께 민간기업의 장비구매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현실상황"을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신세기통신의 미국산 디지털이동전화장비도입이 손꼽았다.

이회사는 최근 미국 루슨트테크놀로지스사로부터 7,100만달러원어치의
이동전화장비를 들여오기로 했다.

이과정에서 신세기는 같은 미국기업인 모토로라와 협상하다 조건이
맞지않아 루슨트쪽으로 구매선을 바꿨다.

이는 곧 한국정부가 민간기업의 장비구매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현실적인 증거"란게 정통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통부는 이번 협상에서 우리나라 국산화정책에 대한 미국측의
오해도 적극 풀어간다는 전략이다.

우리나라가 국산화를 추진하더라도 상당부분은 미국에 의존할수
밖에없어 미국기업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디지털이동전화단말기이다.

현재 국내기업이 이를 국산화해 팔고 있지만 국산화율이 30%에 불과하다.

이는 곧 이동전화기값의 70%는 외국기업에게 흘러들어간다는 얘기다.

게다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기술을 제공한 미국의 퀄컴사는 단말기값의
5.5%를 로열티로 받아가고 있다.

정통부는 이번 협상에서 미국측에게 이런 점을 충분히 설명,미국측의
공세가 기우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이해시킬 방침이다.

민간사업자간의 교류도 적극 추진, 양국 업계간의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정통부는 협상에서 양측의 입장을 교환한뒤 10월중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측은 이미 "한국통신장비시장 진출"이라는 실리를 충분히 챙긴만큼
미국측이 후퇴할수 있는 명분만 있으면 분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있다.

이와관련, 정통부주변에서는 지난6월 선정된 신규통신사업자가 미국산
장비구매계약을 맺고 양국업계간의 협의창구를 만들면 미국측이 물러설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미통신협상이 의외로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미국의 PFC지정이 미국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적인 배경에서 이뤄졌다는
일부의 지적에 비춰볼때 미국측이 대선에 앞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 무역보복조치도 불사하는 강수를 둘수 있다는 전망때문이다.

<정건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