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8층에 위치한 통합구매팀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전사적으로 벌이고 있는 원가절감운동 덕분이다.

삼성전자가 구매하는 자원은 연간 8조원 규모.

통합구매팀은 따라서 삼성전자내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부서다.

그런만큼 원가절감에 대한 기대치도 가장 높다.

그러나 이미 짜낼수 있는 것은 모두 짜낸 상황에서 또 무엇을 절감해야
할지....통합구매팀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구매업무를 전략적으로 "리스트럭처링"하는
것.

우선 각 사업본부별로 구분돼 있던 구매사업을 각 사별로 확대했다.

또 이달부터 소그룹을 단위로 구매업무를 통합하기로 했다.

전자소그룹은 이와함께 11월부터 일본 동남아 미국 유럽 등에서 구매하던
물량까지 통합구매제를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구매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전략이다.

이같은 통합구매의 장점은 우선 구매 업무에서 규모의 경제(볼륨
메리트)를 노릴 수 있다는 것.

100억원어치 부품을 구매할 때는 10억원어치 부품을 구매할 때에 비해
단위부품의 구입 원가나 구매협상력에서 유리한 조건을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통합구매를 할 경우 총 구매액의 10% 정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반드시 협력업체에 대한 납품 단가 인하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협력업체도 연쇄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이익을 누리기 때문이다.

"구매 단위가 커지면 납품받는 부품의 단가를 낮추더라도 채산성은
호전될 수 있다.

협력업체 입장에선 박리다매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구매제란 "누이 좋고 매부 좋은"구매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한
것"(권재형 삼성전자 통합구매팀장)이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구매업무를 소그룹별로 통합하면 계열사내에서 업무의 통일성을
기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적은 인원으로도 구매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현재 통합구매하고 있는 물량은 전체의 19% 내외.표준화된
컨덴서나 주문형 반도체, 철판, 플라스틱류 등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통합구매 제품의 비중을 내년까지 전체 구매물량의 30%로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삼성측의 목표다.

결국 이 부문에서만 연간 1천억원 가까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삼성은 내다보고 있다.

통합구매제의 이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구매정보센터로서의 역할을 담당토록 한다는 게 삼성측의
복안이다.

즉 협력업체와 구매 담당자간의 통로로 "열린 구매"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간다는 의미다.

"지금은 부품업체들에게 일방적으로 특정사양의 부품을 공급해달라는
게 일반적인 구매 양태다.

그러다보니 협력업체들은 그저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부품구매센터가 활성화되면 모기업과 협력기업간의 대화 통로가
고정적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신기술을 채용한 부품개발이 훨씬 활발해질 수 있다"(LG전자
물적자원기획실 S차장)는 얘기다.

전자.자동차 등 구매물량이 많은 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구매업무의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쥐어짜기식" 구매전략만으론 원가절감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다.

각 사업부별로 부품을 구매해 온 LG전자의 경우 국내 조달 부품은
각 공장별 통합구매부서에서, 해외조달부품은 국제 부품조달센터를
중심으로 통합구매를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그간 시범적으로 운영돼 오던 반도체와 공통회로 부품에
이어 올해부턴 강판 플라스틱 등 원자재도 통합구매부품에 추가하는
등 점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대우전자 역시 박스 패드 테이프 등 원자재의 통합구매를 위해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중에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회로부품에 대해서도 통합구매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소극적인 원가절감을 넘어 적극적인 "구매 리스트럭처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통합구매제의 정착 여부가 주목된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