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부총리는 3일 발표한 "최근 경제상황과 향후 정책방향"의 주제를
"안정속의 기업활력회복"으로 설명했다.

나웅배 전부총리의 정책기조는 "고비용-저효율구조 타파"였다.

새 경제팀의 캐치프레이즈가 바뀐 셈이다.

물론 이 두 주제는 커다란 흐름에선 별 차이가 없다.

물가안정의 토대위에 기업경영의욕을 활성화,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원칙"은 같다.

그러나 나부총리의 "고비용저효율타파"가 다소 추상적이었다면 한부총리의
"안정속의 기업활력회복"은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화된 느낌을 준다.

이날 발표된 대책들은 이런 차이를 잘 나타내 준다.

그럴듯한 미래상이나 획기적인 대책보다는 기업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각론에서 하나하나씩 풀어주겠다는 점이다.

우선 대기업들을 위해선 수도권안에 반도체등 첨단업종의 입지규제를 완화
하고 상호지급보증해소등 대표적인 반기업정책으로 꼽혔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재검토한다는 약속을 했다.

세부적인 방안들은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기업의욕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분명한 뜻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중소기업들에게도 은행이 주식예탁증서(DR) 발행으로 조성한 자금을 어음
할인등 운전자금으로 쓸수 있게 하는 등 자금지원을 확대하고 조건부 및
무등록공장을 양성화, 아파트형공장에 대한 지원책등을 내놓았다.

백화점등 유통업체들의 세일규제완화등 구석구석까지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 한부총리의 컬러가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창업"과 "정보통신"분야에 대해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재경원관계자는 "우리 경제는 그동안 중동특수 중국특수등 "해외
프론티어"들이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는 해외 변수들을 찾기
힘들다"며 "이제 그 프론티어를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창업
활성화와 정보통신분야라는게 한부총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표에는 그래서 이 두 분야의 대책들이 상세히 나열되어 있다.

창업활동을 위해 벤쳐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구하고 장외등록요건완화
및 외국인투자허용등 자금조달방안도 구체화했다.

정부의 손길이 미진했던 컴퓨터게임관련산업등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
하는등 정보.통신.게임소프트웨산업발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기도 하다.

한부총리는 물론 이같은 정책을 발표에서 그치지않고 앞으로 매달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경제동향 점검회의"을 열어 직접 챙길 계획이다.

취임때 얘기처럼 "현장이 바뀔때까지" 정책을 밀고 나간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날 발표한 대책들이 전반적인 경제난국을 타개하는데 어느정도의
영향을 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올해 무역수지적자가 2백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등 반도체 철강
자동차등 주력산업들의 수출부진을 타파하기 위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대안들은 별반 눈에 띠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중에는 경기가 상승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경기순환론을
들어 "1년만 고통을 분담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애로사항을 풀어주겠다는 차원에서 구상된 수도권내 공장
입지규제완화정책이나 임금체계개편, 공기업민영화등은 환경 노동단체등
관련단체들의 "이유있는" 반발등이 예상되는 정책들이다.

특히 2급이상 공무원 임금동결등 정부가 임금안정을 솔선수범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으나 노사제도개혁에 대해서는 여전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추상적인 말로 비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번엔 "제목"만 열거된 만큼 듣기 좋은 구호로 그치지 않도록
알맹이 있는 "실천계획"을 내놓아야 한다는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