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동안 조선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내가 겪은 불황은 이번이
3번쨉니다.

첫번째는 지난 78년께 오일 쇼크때였고 2번째는 86년께 였지요.

그리고 3번째가 지금입니다.

마치 10년 주기설이라고나 할까요.

이중에서도 지금의 불황이 제일 모질게 느껴집니다"(최병권한라중공업사장)

최사장의 말처럼 지금 조선업계는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는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은 새벽 순찰때문에 업계에선 "플래시 최"로 이름난
최사장이 짚어보는 이번 불황의 주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70년대와 80년대의 조선 불황은 세계적 해운 시황의 침체등으로
발주물량이 줄어든데서 비롯됐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물량이 나올때면 한국의 조선소들은 심심치않게 성과를
올리곤 했습니다.

그나마 가격이 쌌던 덕분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가격경쟁력마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올초부터 엔저로 일본의 선가가 한국을 밑도는 상황이 되면서 탈출구
없는 극심한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겁니다"

이 말대로 현재의 불황은 한국 조선업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져왔던
가격경쟁력 부분이 무너진데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주요인은 환율의 급작스런 변동.

"지난해초 한때 엔화가 80엔대까지 치솟았을때 내리 고배를 마시던 일본
조선업계가 엔저로 반전되자마자 역공을 취해왔어요.

한국 타도를 작심한 겁니다"(대우중공업 선박영업부 K이사)는 설명이다.

현대중공업 J부장은 생생한 해외 수주담을 들려준다.

"초대형유조선의 경우 일본 업체가 제시하는 선가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1백만~2백만달러 정도 웃돈다면 이미 승부는 결판나고 만 겁니다.

외국 선주들로선 가격이 큰 차이가 없다면 당연히 품질이 좋고 납기가
빠른 일본 조선소를 택하게 되거든요.

결국 우리에게 남는 수단은 중소형급 선박의 틈새시장 공략과 덤핑
수주밖에 없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선업계는 국내 프로젝트에서마저 "적자 건조"를
강요당하고 있다.

지난 8월12일 낙찰자가 선정된 국적 LNG(액화천연가스)수송선 6척의
선가가 조선소들이 추산한 제조원가를 밑도는 척당 2억1천8백만달러
수준에서 결정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엔저와 적자 건조외에도 조선소들의 시름은 또 있다.

고임금에 따른 채산성악화가 그것이다.

특히 장기숙련 근로자가 많은 조선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고임금이
구조적 불황을 장기화시킬 수 밖에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다.

"1년에 10%이상씩 인건비가 올라가고, 작업중지권이다 월급제다 해서
임단협하는데 아까운 시간 다 까먹고,노조의 반대로 경영합리화를 못해
생산성은 정체되고 있으니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 밖에요"(조선공업
협회 관계자)

이런 위기감때문에 조선업계에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올연말까지 대량 수주가 안되면 일감 부족으로 조업단축 현상까지
빚어질 것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사들은 인건비 등 생산비용을 줄이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현대 대우 삼성 한라 등 업체들은 서둘러
중국과 베트남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조선업계에 남은 과제는 불황부터 타개해놓고 보겠다는 합심
단결뿐이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살리는 특단의 조치가 될 것이다.

< 심상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