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인더스트리가 최근 실시한 명예퇴직제에 대해 말들이 많다.

회사내부에서는 물론 밖에서까지 그 배경과 의도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럴만도 한게 이번 명예퇴직에선 회사의 중추세력인 부.과장급
중간관리자 3백80명 중 4분의 1이 넘는 1백4명이 한꺼번에 몫돈을
챙겨 회사를 떠났다.

물론 이전에도 이 회사에 명예퇴직은 있었다.

지난해엔 10년 이상 근속자를 대상으로 1백20명을 명예퇴직 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나 중간간부는 사실 조직합리화와 거리가 먼 계층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에 눈낄이 가고 충격여파가 큰 것이다.

선경인더스트리 관계자는 "경영합리화를 위해 명예퇴직을 실시했지만
그 충격이 다소 심한 것 같다"고 회사분위기를 전했다.

인사숨통을 틔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입된 명예퇴직제가
그동안 평온했던 회사분위기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근로자들이 한동안 고용불안을 느껴 생산성을
올릴 수 없는 건 예상했다"며 명예퇴직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

선경이 <>60개월치 퇴직장려금 지급<>퇴사후 2년간 복리후생비 지원등
파격적인 조건으로 명예퇴직제를 실시하면서 다른 회사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입사 10년차 초임과장이 6천만원을 받고 나가 유학준비를
하고 있다더라""2억원을 받은 모부장은 이미 거래선이던 중소기업에
이사로 출근한다더라"는 등의 말들이 돌면서 "능력있는 사람은 다
나간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회사내에 형성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선경인더스트리 내부에서도 "회사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며
관리자들을 퇴직시킨 만큼 생산직들에 대해선 무차별적으로 퇴직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며 노동조합측에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나는등 심상찮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노조 관계자는 "몫돈"을 챙겨 나간 사람이 영웅시되고 남은 사람도
"머잖았다"는 위기감이 전사에 퍼져있다고 말했다.

화섬업계 관계자는 "명예퇴직의 후유증을 빨리 치유하지 않으면
조직슬림화를 실효를 못 거둘 것"이라며 "빠른 시일내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혁신적인 인사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측이 이런 특단의 조치를 취한데는 이유가 있다.

경쟁력을 갉아먹는 비생산적 요소에는 반드시 메스를 대겟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폴리에스터와 그 원료인 TPA(테레프탈산)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중순부터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폴리에스터 경기의 침체로 올들어
최악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상반기 동안 매출은 3천5백25억원으로 전년동기보다 17.4%가
줄었다.

경상이익과 세전순이익도 각각 1백70억원과 1백8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적자를 봤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경영진이 내린 "특단의 조치"가 바로 명예퇴직을
통한 조직슬림화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연공서열형 고임구조로는 더 이상 경쟁력제고를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도 작용했다.

최종현그룹회장도 선경인더스트리의 상반기 경영실적으로 보고 받는
자리에서 "연봉 2만달러로도 후발개도국과의 경쟁이 안되는 판에
4만달러짜리 종업원이 수두룩하다"며 조직슬림화를 통한 경쟁력제고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를 선경인더스트리 최창원 전략기획실장(이사)이 전격적으로 수용해
곧 바로 중간간부직의 명예퇴직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1천명을 내보내 퇴직금으로 1천5백억원을 빌려 쓰더라도
금융비용을 계산해보면 3~4년 이후엔 성과가 나타난다"고 말해 회사측의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화섬업계도 선경인더스트리의 선택을 시의적절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같은 바람이 화섬업계는 물론 선경그룹과 재계에 확산될 감량경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선경인더스트리와 같은 호조건으로 명예퇴직제를
실시할 수 있는 기업이 적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