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사 월급 봉투에 찍혀 나오는 수당은 무려 24개나 된다.

휴일근로수당 야근수당 근속수당 정규일당 자격수당 등등...

개중에는 적치보상 휴업공상 등 뜻도 모를 수당도 많다.

이 회사는 또 월급봉투에 없는 복리후생성 부가급여만도 연간 10여가지
이상 지급한다.

학원교습비 체력단련비 교통비 식대 생일선물 추석선물 자녀학자금지원비
같은 것 말이다.

한국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은 이처럼 기본급에 덕지덕지 수당이 붙고
여기에 또 부가급여가 따라 나온다.

"기업에서 지급하고 있는 수당 종류는 지난해말 현재 97가지에 달해 도시
근로자의 총 급여중 기본급비중은 52.6%에 불과하다"(경총.94년 기준)는
통계조사가 이를 증명한다.

배(기본급)보다 배꼽(수당및 상여금 월할)이 클 정도가 됐으니 "급여를
받는 봉급생활자 대부분이 자신의 월급이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LG전자 K상무).

가짓수만 많은게 아니다.

임금 산정에 쓰는 기준임금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수당은 기본급의 몇 %로, 어떤 수당은 정액으로 계산되고, 시간외
수당은 통상임금 기준으로, 또 퇴직금은 평균임금 기준으로 한다는 식이다.

한국기업의 임금구조는 이렇게 후진적이다.

그래서 임금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적 임금구조를 그냥 두고는 투명경영이나 세계경영은 한낱 슬로건에
그칠 수 밖에 없다. 21세기 대경쟁 시대를 살아가기도 힘들다"

복잡한 임금관리를 위해 인원 몇명을 더 쓴다고 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임금구조는 그 자체가 기업경쟁력의 주요한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돈을 지급하더라도 수당과 부가급여로 이루어진 임금구조는 동기
유발형 보상체계와는 거리가 멀다"(지승림 삼성그룹비서실전무)는 것이다.

한국의 임금구조가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편법적인 임금조정
메커니즘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수년간 벌어진 임금협상을 예로 들면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노사간의
"언더테이블 머니"를 조장했고, 이것이 수당과 부가급여란 이름으로 매년
자기증식을 해왔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한자릿수 임금인상률(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실질적으론
그 이상의 임금인상을 하기 위해 수당이 마구 신설되고 부가급여의 종류가
늘어난 것으로 봐야 옳다"(김재원 한양대교수.노동경제학).

여기에다 때만 되면 회사에서 보너스나 선물을 주어야 한다는 평균적인
근로자들의 "마인드"도 왜곡된 임금구조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 결과 한국기업의 임금은 근로의욕을 고취시킨다는 본래 기능이 크게
위축되고, 연봉제도입등 임금제도 개선에도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의 임금구조는 시대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글로벌경영 세계경영을 외치면서 "외국인 따로, 한국인 따로"의 임금구조를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기업이 현지에서 가장 애를 먹는 것중의 하나가 노무
관리요, 그 핵심도 바로 현채인과 주재원간의 상이한 임금구조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외국의 우수인력을 채용할 때 이들에게 수십가지 수당을
설명해 봤자 이해할 사람이 있겠느냐"(홍성원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이사)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수당과 부가급여 위주로 된 임금구조가 국민경제내
에서 "선순환"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부가급여는 분명 임금의 일부분이면서 "가계 예산"으로 쓰여지기 힘들다.

가욋돈 내지 덤으로 받는 것처럼 인식된 돈은 으레 먹고 마시고 노는데
쓰기 십상이다.

논리를 비약시킨다면 "한국적 과소비 경제"의 한 원인도 임금구조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임금구조는 무엇보다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가계에도 별 보탬이 못되며,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기
어려운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임금구조의 리스트럭처링에 나서야 할때가
된 것이다.

리스트럭처링의 방향은 물론 임금구조를 단순화시키고 다기화된 기준임금을
표준화시키는 쪽으로 모아져야 한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