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메가D램 시장이 본격 형성될 내년에는 세계 반도체 업계가 지난
85년에 이어 제2의 구조 변혁을 맞게 될 것이다"

일본 노무라 종합연구소가 최근 반도체 경기침체 이후의 산업 구조에
대해 가상 시나리오를 내놔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시나리오의 핵심은 적자생존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

기술력이 있는 한 두 업체가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기술력이 떨어지는
업체는 사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노무라는 이달초 "반도체 산업의 전망"이라는 자료를 통해 올 하반기
부터 각 메이커들이 64메가D램으로 주력 생산품을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6메가D램의 가격하락으로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운 업체들이 앞다퉈
세대교체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64메가D램 시장에서도 16메가D램 못지않은 경쟁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게 노무라의 분석이다.

노무라는 따라서 64메가D램에서는 초기 시장부터 경쟁이 격화되면서
몇몇 기업은 도태되기 시작하고 또 일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수율 때문이다.

수율이란 원재료인 웨이퍼에서 반도체가 나오는 비율이다.

수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이익을 많이 낸다는 뜻으로 통한다.

반도체 업체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중 하나인 수율은 공장을
가동한 지 최소 1년은 지나야 적정수준에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공장가동 초기엔 적자가 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각 업체들이 한꺼번에 64메가D램 생산에 들어간다는 데 있다.

초기 시장부터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것.

가뜩이나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인데 수율도 안나고 경쟁은 치열하니
채산성이 맞을 리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16메가에 이은 누적적자의 증가로 문을 닫는 업체가 생길 것이란
게 노무라의 분석이다.

반면 생산기술이 뛰어나 수율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기업은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무라의 이같은 시나리오는 물론 가상이다.

그러나 이 전망은 지난 85년 세계 반도체 업계에 불어닥쳤던 "64K
파동"으로 인한 구조개편의 복사판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가상"으로만
넘길 수는 업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64K파동이란 지난 85년에 일어났던 가격 급락사태를 말한다.

당시 64킬로D램이 개당 4달러에서 70센트로 떨어졌던 것.

생산원가인 1달러70센트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거래가격이었다.

당시 막 시장이 형성됐던 256킬로D램도 값이 고꾸라졌다.

미국의 인텔사 제네랄 일렉트릭사 웨스팅 하우스사 내로라 하는 업체들이
D램 사업에서 철수한 게 바로 이때다.

이들은 팔 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에서 더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어버렸다.

반면 일본 도시바는 64K파동의 가장 큰 수혜자로 등장했다.

각 메이커들이 64킬로D램과 256킬로D램으로 헤메고 있을 때 1메가D램
공장을 일찌감치 가동해 초기 시장을 독점했다.

도시바가 이같은 과감한 작전을 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율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업계는 지금 상황이 지난 84년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급락한 것도 그렇고 세대교체가 이뤄진 직후 경기가
침체된 것도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라의 가상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 경우 어느 업체가 도태되고 또 어느 기업이 신시장을 독점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결정적인 요소가 수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기업은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기업은 생산에 관한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다.

수율은 각 업체가 극비로 취급하고 있어 정확한 수치가 발표된 적은
없다.

그러나 한국업계의 수율은 일본 업체들 보다 평균 5%이상 높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노무라의 시나리오 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다.

대만업계의 신규참여등 변수도 많다.

그러나 기술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노무라의 시나리오는 국내업계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임에 틀림없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