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의 수출입은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등 주력 업종의 수출이 일제히 추락한 반면
수입은 소비재를 중심으로 폭증세를 나타냈다.

무역적자는 어느새 1백억달러를 넘어 버렸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어 수출한국의 전도가 암울하기만
하다는 위기감이 경제계에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수출이 3년 반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은 무엇보다 "수출 효자
상품"들이 모두 침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는 국제가격이 지난 6월 16MD램 개당 11~13.5달러에서 7월엔
9~11달러로 더 떨어져 지난 20일 현재 37%나 수출이 감소했다.

철강 석유화학도 주요 수출국인 중국의 수요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해 각각
20%와 8%이상씩 줄어들었다.

게다가 그동안 호조를 보였던 자동차 마저 지난달엔 노사분규와 생산공장의
집단휴가등으로 24.5%의 수출감소세를 보인게 결정적이었다.

다만 경공업 수출 지난 6월 6.3% 감소에서 7월들어 13.6% 증가로 다소
회복됐으나 주력업종의 수출부진을 상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는게
통상산업부 설명이다.

수입 폭증의 주범은 소비재였다.

지난 6월 21.4%의 증가세에서 다소 꺾이긴 했으나 소비재 수입증가율이
7월들어 20일까지 16.1%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국내 소비수준의 고급화로 승용차(83.9%) 휴대용전화기(71.5%) 신발류
(60%) 의류(48.4%) 화장품(41.7%)등의 수입이 크게 늘어났다.

이런 고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한 원자재와 자본재의 수입도 덩달아 증가했다.

원자재와 자본재는 지난 6월 각각 1.5%와 6.0%의 감소를 나타냈으나 7월엔
17.4%와 20.8%씩 신장했다.

물론 지난 7월1일부터 시행된 기초 원자재의 할당관세 인하 효과와 원유등
유류제품의 수입증가가 무시못할 요인이긴 하지만 최근의 국내 과소비
분위기가 더 큰 원인이란데는 이견이 없다.

이렇게 볼때 한국의 무역상황은 하반기중에도 개선될 가망이 거의 없어
보인다.

수출부진의 근인이 기본적인 엔저와 반도체등 주력상품의 국제가격 하락에
있는 탓이다.

모두 외부 환경요인에 따른 것이어서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다.

수입 증가의 경우도 국내 소비 분위기가 당장 가라앉지 않는 한 별반
대책이 없는게 사실이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은 지표상으로도 나타난다.

수출입의 선행지표인 수출신용장(L/C) 내도액과 수입면허(I/L) 발급실적이
그렇다.

지난 7월들어 20일까지 수출신용장 내도액은 3.1%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수입면허 발급은 28.9%나 증가했다.

하반기중에도 "수출부진-수입폭증"이 지속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지난달 31일 부랴부랴 소비억제를 위한 저축증대방안을 발표했으나
대세를 돌려놓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통산부는 이에 대해 "그렇게 낙담할 일만도 아니다"는 입장이다.

수출둔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수출여건 악화로 인한
주요 교역국의 공통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상반기 수출증가율 11.8%는 일본(<>8.6%) 중국(<>8.2%)
대만(6.4%) 등보다 높은 것이란 증거도 제시했다.

그럼에도 수출급락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는 경기하강 물가불안등 거시경제
여건과 맞물려 심상치 않은 사태란 지적이 많다.

한국경제가 일시에 추락하는게 아니냐는 위기감 마저 감돌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년 8월 엔고가 꺽이기 시작하면서 부터 엔저에 대한 면밀한 대책이
긴요했었다. 그때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던게 지금의 화를 자초했다"
(L상사 K이사)는 업계의 목소리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