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2일 LG화학 여의도 본사.

독일의 정상급 화학회사인 베바사의 벨헬름 고이킹회장이 석유화학
연구개발 정유 정보지원부문등의 사장 4명을 이끌고 이 회사를 찾았다.

특별한 합작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이 회사 성재갑부회장을 만나 LG화학이 지난 88년부터 추진해온
경영혁신활동에 대해 "한 수 배우고" 갔다.

특히 <>생산직 팀제<>품질혁신운동<>엘(엑설런트 LG)프로젝트등
혁신활동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조만간 실무팀을 보낼테니 "자세히" 가르쳐달라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에 앞서 지난 4일 선경그룹에도 비슷한 목적의 "코장이"들이
찾아왔다.

경영혁신활동에 관한한 세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인 미국 GE사의
조사단이었다.

이들 조사단 4명은 선경이 추진하고 있는 "수펙스"와 "SKMS(선경경영
관리체계)"에 대해 4시간 동안 강의를 받고 자료를 챙겨서 떠났다.

최근 들어 국내 기업의 "우수한" 경영노하우를 배우려는 선진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경영에 관한한 선진국을 "베끼기" 바빴던 국내
업체들이 경영기법의 수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한국 기업이 세계 곳곳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면서
"역 벤치마킹"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달 들어서도 인도네시아 최고의 유화업체인
시마르나스의 최고경영진이 벤치마킹차 찾아와 전국 사업장을 "훑고"
갔다며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업체들의 벤치마킹지도를 위해 전담부서를
마련해야할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의 석유화학총공사(SINOPEC)는 지난 94년 11월부터 올 4월까지
다섯차례나 선경그룹을 방문, "수펙스"등 선경의 경영노하우를 꾸준히
배워가고 있을 정도다.

선경은 이에 따라 아시아권 회사들을 위한 영문판 수펙스 책자를
별도로 제작해놓고 있다.

직접 찾아오는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지난 83년과 91년 아시아지역에서의 대표적인 고속성장 사례로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케이스스터디 대상이 됐던 대우그룹의 경우는
최근 하버드측으로부터 세계경영과 경영혁신 사례를 담은 케이스스터디
교재의 작성을 부탁받아놓은 상태다.

이들 선진업체들이 한국의 경영성과를 배우고 있는 이유는 한국이
아시아지역에서 새로운 벤치마킹대상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경 관계자는 "한국의 경영이 일본과 미국의 경영혁신활동의 장점들을
골고루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수출과 해외현지시장 공략에선 남다른
성과를 거둬왔지만 곳곳에서 현지업체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등
경영노하우면에서는 여전히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 아시아지역에선 일본이라는 "뚜렷한" 벤치마킹 대상이 이미 건재개
한국식 경영은 주목은 끌지 못했다.

일본의 경영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기업의 사장들이 기모노를
입고 일본식 정자 속에 앉아 일본 문화를 체득하려는 모습이 미국의 유력
주간지에 소개될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었다.

미국을 누르고 세계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 일본기업의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내조합"등 3종의 신기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았다.

"도대체 일본 기업이 사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비결은 무엇인가"가
세계 경영계의 관심이 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리엔지니어링"
"다운사이징"등 미국식 경영기법이 성공을 거두면서 일본경영은 관심선
밖으로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서 일본이 가장 경계하는 나라로서 한국의 경영이 새로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LG화학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경영혁신 활동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어 구미와 일본의 선진기업들이 그 노하우를 배우려 하는 것"이라며
동등한 입장에서 경영노하우를 교류하게 된 만큼 선진 우량기업과의
상호벤치마킹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영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