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사업-장치산업, 전략사업-생활산업"

한화그룹이 짜고 있는 21세기 사업 포트폴리오는 이렇게 윤곽이 잡혀
있다.

그동안 중화학에 집중됐던 무게비중을 줄여 "날렵한" 모습을 갖춘다는
것이다.

석유화학과 에너지에서 쌓아온 저력을 바탕으로 정보통신과 레저 관광
오락 유통등 생활산업부문에서 다시 꽃피우겠다는 것.

한화가 변신을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로 창립 44주년.

소위 "기업평균수명"이라는 40년을 넘겼다.

변화와 실험을 거부하고 기존 성과에 만족하기 쉬운 "장수기업"의
부작용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부친(김종희초대회장)의 창업을 물려받은 김승연회장의 한화호는
그동안 수성을 넘어서 공격적 경영을 해왔다.

한양화학 명성 등을 인수해 제2창업을 일궈냈다.

한화호는 지금 돛을 다시 올렸다.

돛의 이름은 "제3의 개혁".

개혁의 요체는 생활산업진출.

말하자면 사업의 소프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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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 = 유화선 <부국장대우 / 산업1부장>

-한화의 힘, 한화의 그룹력은 어디 있다고 생각합니까.

<> 노실장 = 한화는 화약을 모체로 하고 석유화학과 에너지사업을
통해 10대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석유화학 분야와 에너지사업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경영력,
그것이 바로 한화의 힘이겠지요.

-석유화학이나 에너지는 이미 한계에 와 있는 산업이라는 시각도
많습니다.

<> 노실장 =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인류가 살아가는 한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산업입니다.

유화의 경우는 특히 중국과 동남아 시장 전망이 밝습니다.

신소재 생명공학 등의 분야로 다각화해 나간다면 새로운 고성장 기회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에너지 분야도 마찬가집니까.

<> 노실장 = 가스나 발전사업 등으로 확대해 나갈 여지가 많지요.

중국의 수요도 수요지만 통일후 북한의 에너지 수요는 정말 무한대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한화의 에너지사업은 정유의 경우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발전과
가스사업은 국내에서 강화한다는 계획이지요.

가스공사 민영화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성공한 그룹이 흔히 그래왔듯이 한화도 기존 사업부문에만 너무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듭니다만.

<> 노실장 = 장치산업에서 성공한 기업은 새로운 실험과 변화를
싫어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우린 그렇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정보통신, 그 중에서도 특히 위성통신과 위성방송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PCS(개인휴대통신)등 서비스분야에선 늦었지만 위성통신부문에선 앞서
나가겠다는게 한화의 변신 목표입니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단도 중요하지요.

<> 노실장 = 교환기와 단말기 생산업체인 한화전자정보통신을 그룹의
모회사인 (주)한화에 흡수 합병시킬 계획입니다.

(주)한화의 자금력등 시너지 효과를 통해 핵심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서지요.

정부로부터 신규통신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도 뛸 겁니다.

-한화는 오히려 레저.관광.유통부문에서 비교 우위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보유 부동산이 많아 유리할 것 같은데요.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선 상황이니 사업전망도 밝을 거고요.

<> 노실장 = 한화의 비교 우위는 땅보다는 역시 경험이지요.

물론 땅도 많습니다.

한화국토개발(구명성)이 갖고 있는 땅만도 전국에 1,500만평이나
되지요.

한화유통 보유부지도 창원 대전 원주 부평등 전국 각지에 있고요.

(주)한화의 부동산도 전국에 1,000만평 정도 됩니다.

-이들 땅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계획도 이미 잡혀 있겠죠.

<> 노실장 = 전국 18개 지역에 5,000실의 콘도를 지을 겁니다.

5개 지역에 108홀의 골프장을 만들 거고요.

춘천 설악 제주지역에 놀이시설 골프장 스키장 등이 포함된 테마파크를
건설하고 서천 태백 등엔 복합리조트를 조성할 겁니다.

-유통부문도 가닥이 잡혔나요.

<> 노실장 = 현재는 백화점 슈퍼마켓 할인점등 모두 검토하고 있습니다.

생각 같아선 세가지 다 했으면 합니다.

-유통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한화유통은 어떻게 돼 가는 겁니까.

김승연회장 형제가 화해하면서 빙그레측에 넘기기로 했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 노실장 = 전혀..유통을 차세대 전략사업으로 확대하려고 하는
마당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부적으로 검토한 사실도 없어요.

김회장 형제간 지분문제는 현 상태로 종결됐다고 보면 됩니다.

-계획대로 되면 한화그룹은 21세기에 레저.유통그룹으로 탈바꿈
하겠네요.

<> 노실장 = 한화는 레저.관광.유통 뿐만 아니라 외식 실버 주택사업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1세기 한화그룹은 소위 "생활산업" 전반의 사업을 영위할
거라고 보면 틀림없을 겁니다.

-레저.유통사업은 일반적으로 투자회임기간이 길지요.

투자비가 오래 잠기면 캐시플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텐데요.

<> 노실장 = 한화는 이익이 나지 않는 투자는 절대 안합니다.

확고한 계산하에서 투자합니다.

우성과 유원건설을 인수하지 않은 것만 봐도 한화의 신규사업 검토가
얼마나 치밀한 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우성과 유원건설 인수는 왜 포기했습니까.

<> 노실장 = 우리가 조사한 것에 비해 은행측이 제시한 인수조건이
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주 깊게 조사했습니다.

우성 인수를 검토할 때는 그 회사가 보유한 전국 방방곡곡의 땅까지
자세하게 조사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지난 82년 한양화학 인수 당시 한화는 너무 무모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한화는 한양을 인수해 굴지의 종합화학회사로 키워냈지요.

명성 인수에서도 재미를 봤고요.

더구나 우성은 명성처럼 땅도 많고..

<> 노실장 = 경영환경이 바뀌면 경영스타일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한화는 지금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기업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인수만 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옛날 식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부실업체는 잘 조사해 봐야 합니다.

정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합니다.

그냥 당하는게 아니라 망할 수도 있습니다.

21세기는 대경쟁 시대라지 않습니까.

-경영스타일과 함께 사원상도 바뀌고 있나요.

<> 노실장 = 한화맨은 순진하고 진실하며 재주를 덜 부리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지요.

동료간 상하간은 물론 주주 거래선 소비자 등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회사원, 그것이 한화맨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바뀔 수 없는 한화인상이지요.

치고받는 문화가 한화엔 없습니다.

-치고받는 문화, 말하자면 내부경쟁 체제가 없다면 그만큼 조직의
발전이 더딜 수 밖에 없을 텐데요.

<> 노실장 = 한화는 경쟁체제보다는 책임경영을 더 강조합니다.

부회장인 소그룹장이 해당 소그룹을 완전히 책임지는 책임경영 풍토가
정착돼 있습니다.

경쟁력이 없다 싶은 사업은 사장이 알아서 정리할 정도로 책임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책임경영보다 김승연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이미지도 좋지 않고요.

<> 노실장 = 김회장 역할은 해외투자나 대형 프로젝트 등을 결정하고
소그룹간에 문제가 있을 때 조정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외부에 알려진 것은 실상과 전혀 다릅니다.

-외부에 다르게 알려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 노실장 = 글쎄..아마도 김회장이 젊은 나이에 대그룹의 총수를
맡아 "나이 많은 부하"들을 상대하다보니 그렇게 비춰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회장이 정말 권위적이진 않습니까.

<> 노실장 = 김회장은 우선 사원들과 등산 가는 걸 좋아합니다.

매월 둘째 토요일엔 반드시 사원들과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또 격의없는 술자리도 자주 갖습니다.

한화의 임원들은 평이사까지도 회장하고 술 한 번 안한 사람이 없을
정도지요.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회장실 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국내 10대그룹중 한화만큼 직원들이 회장을 만나기 쉬운 데는 아마
없을 겁니다.

밖에서 듣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한번 만나 보시죠.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