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들이 누가 제일 빠른가 달리기시합을 벌였다.

놀랍게도 1등은 티코였다.

작은 차라는게 창피해서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이다"

대우자동차의 티코가 나왔을 때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블랙유머중의
하나이다.

호사가들이야 별다른 생각없이 웃고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이런 루머가
유행할 때마다 마케터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 앉는다.

은연중에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기
때문이다.

소문을 이용한 여론조작은 정치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사제품을 알리고 경쟁제품은 깎아내리는 구전마케팅은 기업경쟁에서도
주요 판촉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 대우 기아 등 자동차회사들은 본사는 물론 지점이나 영업소에도
택시관련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철마다 운전기사들을 위로하는 이벤트를 마련하거나 판촉물을 증정,
이들의 환심을 사는게 중요 업무의 하나이다.

국내 승용차시장에서 택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5% 가량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관한한 전문가로 인정받는 택시기사들이 승객들에게 던지는
한마디는 제품의 이미지나 신뢰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낯선 곳에서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할 때 기사식당을 이용하면 낭패를
보지 않는다는 말도 택시기사들의 "카더라"통신이 매우 강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영업사원이나 법인택시과의 직원들을 동원, 신차에
대한 홍보를 하거나 부정적인 소문을 차단하는 MTM( Mouth To Mouth )전략을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류회사 직원들은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일과후의 업무가 늘어난다.

거주지별로 또는 퇴근길 노선별로 2~3명씩 조를 이룬 뒤 1인당
1만~2만원씩의 판촉비를 받고 술을 마시러 가는 것이다.

할당받은 지역의 주점이나 소매점을 방문하여 신제품을 주문하는게
보통인데 없다고 하면 "그술 참 맛있다는데 다음에는 꼭 비치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경우 한 업소에서 1~2병 정도만 마시는게 요령이다.

하룻밤에 많게는 3~5개 업소까지 방문해야 하는 만큼 한 점포에서 취해
버리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OB맥주 마케팅팀 관계자는 "신제품이 시판된지 1주일후부터 한달가량이
중요하다"며 "회사직원이라는 티가 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문을 퍼뜨려 달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구전마케팅은 이밖에도 영화나 음반처럼 단기간의 "입"선전이 중요한
문화상품이나 화장품 과자 등 비슷한 또래의 유행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품에 단골처럼 사용되고 있다.

컴퓨터 무선호출기 휴대전화 등은 구매자의 20%이상이 주위의 권유에
의해 제품을 샀다는 조사결과도 나와있다.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의 김철성씨는 "제품에 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대사회에서 소문은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특정 정보를
설득력있게 전달해준다는 면에서 광고나 홍보보다 더 큰 효과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소문을 내는 것 못지않게 제품에 대한
유언비어나 흑색선전을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긍정적인 소문이 구매로 연결된다는 증거는 없지만 부정적인 소문은
반드시 제품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져 치명상을 입힌다는게 마케터들의
상식이다.

대우자동차는 지난 94년 티코에 대한 악성 루머가 극성을 부릴때 역공작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사내공모를 통해 티코에 대한 긍정적인 유머를 발굴한 뒤 이를
전파시키자는 계획이었다.

마땅한 당선작이 없어 불발로 그쳤지만 구전마케팅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케 한 사례였다.

마케팅전문가들은 "소문의 향방을 조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소비자 제일주의의 마케팅이 유일한 처방인 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