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의 미국 자회사인 맥스터사는 지난 1월 미국 증권가에서 이름이
사라졌다.

상장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지난 93년 37%(1억5천만달러)의 지분을 인수했던 현대가 올해 1월
나머지 63%(2억4천단달러)마저 사들이면서 시황판에서 이름을 빼버린
것이다.

현대가 맥스터의 상장을 폐지한 것은 영업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다.

오히려 실적은 크게 좋아지고 있었다.

상장 폐지 직전인 지난해 4.4분기 적자는 2천5백만달러로 인수당시의
1억2천1백만달러 보다 79%가량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현대는 주식시황판의 명단에서 맥스터를 뺐다.

그 이유는 이렇다.

소액주주들의 간섭을 배제하고 강력한 친정경영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

다시말해 빠른 결단과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하는 "현대식 경영"을
본격화해 이익 극대화라는 제2의 도약을 하겠다는 의지는 신호탄이다.

현대식 경영은 상장폐지후 곧바로 실현되고 있다.

맥스터가 갖고 있는 태국 싱가포르 미국 공장의 생산라인을 컨베이어
방식에서 미니셀(mini-cell)방식으로 전면교체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
예다.

미니셀 방식이란 수십명이 한 라인에 달라붙어 작업하는 컨베이어식과는
달리 3~4명이 한 라인을 맡아 전공정을 처리하는 첨단 생산공법이다.

종업원 1인당 생산성이 주당 90개로 기존 방식보다 2배이상 높다.

또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해 PC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맥스터는 사실 작년에 미니셀 방식으로 라인을 교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안정된 투자를 바라는 소액주주들이 생산라인 교체라는 모험에 제동을
건 것이다.

결국 주주의 간섭배제가 흑자전환의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린 현대는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면서 상장폐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그리고 생산라인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등 부품업체를 인수해 수직계열화를 이루려는 작업에도 본격나섰다.

또 지난달엔 세계에서 처음으로 2기가바이트급 HDD를 내놓았다.

오너체제에 힘입은 과감한 결정으로 "남보다 한발 앞서 달리는 경영"에
본격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맥스터의 주력 상품인 HDD(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는 타이밍이
중요한 제품이다.

HDD란 컴퓨터의 보조 기억장치다.

HDD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PC시장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대응하는 순발력을 갖고 있느냐가 결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따라서 "회사의 발전보다는 주주의 이익실현을 추구하는 주주지향형의
미국식 경영은 순발력내는 데는 장애물에 불과했다"(박종섭 맥스터사장).

"올해 4.4분기 부터는 흑자로 돌아설 것"(정몽헌 현대전자 회장)이란
자신감은 상장폐지와 지분 1백%인수로 구축된 강력한 오너경영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맥스터가 오너체제를 구축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적 경영체질로 완전히
변화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미국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종업원 1천명중 현대전자에서 파견된 사람이 단 두명이라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종업원 관리면에서도 조직 플레이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높이 사는
미국식 경영기법을 따르고 있다.

스탁 옵션(stock option)제 실시가 대표적 예다.

스탁 옵션이란 종업원들이 일정한 성과를 올렸을 경우 회사의 지분을
떼어주는 제도.

예컨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달성했거나 영업실적이 뛰어날 경우
회사지분을 인센티브로 부여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미국사회에서는 조직보다는 개인의 능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게 스탁 옵션제 실시의
목적이다"(박사장).

결국 맥스터는 주주의 이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 추구라는 한국적 경영
목표를 설정하는 한편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국기업의
특성을 받아들이는 "한미 혼합형"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오너체제 구축과 철저한 현지화 경영의 봉합이라는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실험하기 시작한 맥스터가 계획한 대로 올해말에 흑자를 달성할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