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10위권의 수출대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최하위권을 맴도는
북한에 뒤지는게 한가지 있다.

다름아닌 방산제품 수출이다.

방위산업진흥회 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89년부터 93년까지 4년간
6억달러의 무기를 수출했다.

세계 15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반면 한국의 방산수출은 그 절반정도에 그쳤다.

제품수준이 떨어져서 그런게 아니다.

독자기술로 개발한 고유브랜드 제품이 적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나오는 방산제품은 대부분이 미국의 면허를 받아 생산하거나
아니면 기술을 도입해 만드는 것 들이다.

구조적으로 미국측의 사전양해 없이는 수출을 할 수없게 돼 있다.

방산업체들은 불황타개를 위해 지난 93년 미국에 1백85건의 수출승인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측이 "OK"싸인을 보낸 제퓸은 20개에 불과했다.

무기가 적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위해선 어쩔수없다는게 미국의
설명이나 경쟁자를 키우지않겠다는게 그들의 속셈이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미국은 심지어 1차대전 이전에 개발된 방산제품에 대해서도 수출금지의
족쇄를 풀어주지않고 있을 정도다"(국방부관계자) 재래식 총포나 탄약 등
기본무기가 방산수출의 주종을 이루는 것도 고가제품시장을 독점하려는
미국의 견제 때문이다.

실제로 91년의 경우 총포류와 군용트럭등 기동장비가 전체 방산수출의
무려 71.7%나 차지했다.

지난 83년의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3억달러로 급증했던 방산수출이
그후 연간 1억달러이하로 급감한 것도 수출구조가 이처럼 소모품중심으로
돼있다는데 원인이 있다.

따라서 방산의 불황타개를 위해서는 독자기술로 고유브랜드의 제품을
개발하는 것 밖에는 길이 없다.

대우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독자생산한 60만달러짜리 장갑차와 2천2백만
달러짜리 군함을 방글라데시등에 수출한데서 알 수 있듯이 가능성은
충분하다.

업계는 지난달 구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말레이시아 방산전(96 DSA)"에서
현대정공의 한국형전차(K-1)등이 단연 인기를 끌었다는데 고무돼있기도
하다.

현대정공 관계자는 독자기술로 개발한 제품은 지형과 체형상 미국산
보다 동남아시장개척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번 방산전에서 말레이시아의 하미드 알버국방장관을 비롯 현지
각주의 술탄(주왕)레이토 필리핀 국방장관 레듬 싱가포르 국방제2차관보를
비롯 인도네시아 국방차관 태국과 브루나이의 육군총사령관등이 "의미있는"
참관을 했다.

특히 알버 국방장관은 양복을 입은 채로 직접 한국형 전차의 운전석까지
들어가 내부시스템을 살펴보고 성능 제원등을 꼬치꼬치 물어보는 등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현대정공은 말레이시아에 대한 전차수출이 조만간 열매를 맺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93년부터 1백11대의 장갑차를 수출한 대우중공업이
인도네시아와도 수출상담을 벌이는등 수출지역 다변화에 나선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방위산업진흥회 주영일이사는 "말레이시아 방산전은 그동안 군납에만
의존해온 방산업계가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군납물량 축소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업체들이 동남아등에 대한
수출로 불황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

말레이시아 방산전에는 한국의 6개업체가 30여개 품목을 전시했다.

현대정공의 K-1전차 구난전차 교량전차, 대우중공업의 화생방정찰용
장갑차와 90 포탑탑재 장갑차등은 "일취월장"하는 한국방산수준을
보여주는 "간판스타"로 주목을 끌었다.

"방산은 군에 납품실적이 있어야 해외시장개척도 가능하다.

그러나 업체가 개발완료한 무기에 대해 정부가 구입결정을 미루는 사례가
많아 수출협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대우중공업 김광석이사)는 것.

업계는 전략무기일수록 세계각국의 대통령 수상등 정상들이 직접 나서
"세일"을 벌이고 있다며 정부도 방산세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의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