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종화 전독점국장의 구속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공정거래
위원회가 한달도 안돼 다시 수석국장인 정재호 정책국장이 수뢰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자 기관 설립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더욱이 이국장 구속이후 각종 제도 개혁은 물론 직원윤리규정 제정과
친절봉사운동까지 펼치고 있던 공정위로서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름에 먹칠을 한 꼴이돼 버렸다.

이국장 구속당시만해도 "재수없이 걸렸다"는 일부 동정론도 있었으나
이번 사태로 공정위와 부정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임을 부인하기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18일 직원연찬회를 갖고 이 자리에서 직원윤리규정을 천명하는
한편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을 계획이었으나
정국장 사건으로 이 행사마저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김인호 위원장은 "사법처리절차가 진행되는 결과를 지켜보고 그 결과에
따를 것"이라며 "기관의 책임자로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든 부정은 제도적인 미비점과 개개인의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나 제도적인 장치는 이미 어느정도 갖추어졌다고 생각된다"며
"법원의 판결을 지켜본후 미비한 점이 있다면 추가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잇따른 공정위 핵심국장의 구속과 관련, 수사의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 주변등 일부에서는 최근들어 공정위 직원들의 수뢰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검찰이 드디어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검찰이 공정위를 표적수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이종화국장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과정에서 조선맥주가 관련된 것을
알았고 그 와중에 정국장의 수뢰혐의도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선맥주가 뇌물을 준 공무원이 공정위에만 있었겠느냐
며 유독 공정위 간부만을 검찰이 다시 소환한 것은 표적수사의 의혹을 짙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정 두 국장이 모두 검찰과 공정위간의 협의 창구인 공정거래사법
협의회의 공정위측 대표였던 점을 감안하면 두 기관의 고질적인 알력이
공정위간부 구속으로 나타났다는 시각이다.

어쨌든 장관급 기관으로 새롭게 태어나려던 공정위는 잇따른 간부의 비리
사건 연루로 당분간 "불공정거래위원회"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기 어렵게
됐다.

<김선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