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매출 4천3백억원에 11억원의 흑자를 올린 기업에 10억원의 지역
신용보증기금을 출연하라고 하니 말이 됩니까"

경남 창원에 사업장을 갖고 있는 K그룹의 K사장(54)은 지난해 재무제표를
직접 들고 최근 경남도청의 경제통상국과 중소기업국을 찾아가 읍소성
항의를 해야 했다.

경남도는 K사장에게 "10대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으로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면서 "경남신용보증조합에 10억원의 기금을 출연하라"고 행정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담보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의 신용보증확대를 위해 경남신용보증조합을
설립하는데 전적으로 찬성한다"며 "그러나 기업들의 재정상태와 경영실적을
감안하지 않은채 기금을 일방적으로 할당하면 어떻게 하느냐"는게 K사장의
항변.

그는 경영실적을 감안, 1억원만 내겠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도청사를
나서면서 씁쓰레한 마음을 떨칠수 없었다.

비단 K사장만이 아니다.

중소기업살리기가 4.11총선의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지자체마다 지역신용
보증조합에 기금을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 대기업체 최고경영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경영실적이 좋은 현대 삼성 LG등의 계열사들은 그래도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경기양극화로 고전했던 하위그룹들이야 벙어리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용보증 조합을 설립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는 경남 부산 경기
광주 전남등 5곳.

이들 지자체의 신보기금은 2백억~3백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일 개소식을 갖고 영업에 들어간 경기도에만 삼성 현대 LG 선경 쌍용
기아등 6대그룹이 각각 20억원씩 1백20억원을 출연했다.

이들 그룹들은 광주 경남등에도 비슷한 규모의 액수를 내기로 약속해 놓은
상태다.

현대 삼성등의 경우 경남 경기 광주등 3개 지자체에 모두 70억원씩의
기금출연을 했거나 내놓기로 약속했다.

대기업들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 인천 대구 경북 전북 대전 충남등도 이에 자극받아 신보설립을
서두르면서 "왜 우리시와 도에는 기금출연을 안해주느냐"며 "동등대우"를
해달라고 항의하고 있다.

전경련관계자는 이와관련, "중소기업의 신용대출 확대를 위한 신보설립에
대기업들이 기금을 출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 "그러나 대기업들의
"곳간사정"을 감안하지 않은채 "대기업은 봉"이라는 식으로 무차별적으로
돈을 내라는 것은 또다른 준조세나 다름없다"고 업계를 대변했다.

< 이의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