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욱 삼성전관 대표(51)는 대표이사로서는 "노련한 신인"이다.

그의 명함에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찍힌 지는 불과 3개월밖에 안됐다.

지난 연말인사에서 처음으로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그는 취임하자 마자 중국에 두개의 브라운관 공장을 건설하는 등 신인다운
패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추진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노련함이다.

손대표는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기획통이다.

회사생활의 대부분을 기획분야에서 보냈다.

삼성전관으로 오기 전에는 그룹비서실에서 그룹 전체의 경영기획과 전자
소그룹의 전략기획을 맡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직을 관리하고 계획을 세우는데 전문가인 셈이다.

취임후 "접붙이기론"이라는 독특한 경영철학을 내세우며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신규사업 진출등 사업확장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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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생활을 쭉 하시다가 처음 지휘봉을 드셨는데 어떻습니까.

<>손대표=재미도 나고 힘도 들고 그래요.

기획만 하다가 그것을 집행까지 하는 새로운 일을 맡으니까 일하는게
즐겁습니다.

사실 기획은 눈에 보이는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내 의사 결정 하나하나가 회사경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낍니다.

집에서도 일해야 할 만큼 개인적인 시간도 없고요.

-무슨 일을 집에서까지 하십니까.

<>손대표=저희 사내 PC통신엔 종업원들과 대표이사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하루 평균 대여섯건이 들어오는데 회사에서 일일이 답할 수가 없어서
집에 연결해 놓고 밤시간을 이용하지요.

평균 1시간은 걸리는 것 같아요.

-경영철학으로 "접붙이기"를 강조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손대표=접을 붙이지 않은 감나무엔 땡감밖에 열리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종업원들에게 늘 새로운 기운을 접붙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지금 접붙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손대표="신바람"입니다.

한국인은 조직원이 한 마음 한 뜻이 됐을때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한번은 제 미국인 친구가 "미국 종업원의 생산성은 회사에 따라 30%정도
편차가 나는데 한국에선 회사별로 그 편차가 2백%도 넘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그 원인이 합심해서 일하고 그것 자체를 즐기는 신바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신바람은 어떻게 일으키실 작정입니까.

<>손대표=종업원들에게 회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삼성전관은 브라운관 전문업체로서 이 분야에서 명실공히 세계 1위 업체
입니다.

이말을 뒤집어 보면 도전할 목표가 없다는 얘기와도 통합니다.

현상만 유지해도 1위라는 영광은 따라오게 돼 있어요.

이것은 장기적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차전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등 차세대 핵심 부품사업에 진출해
종업원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줄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80%에 이르고 있는 브라운관의 매출 비중을 오는 2005년
까지 40%로 낮추고 신규사업을 강화한다는 "드림 005"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브라운관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뜻입니까.

<>손대표=아닙니다.

투자는 계속합니다.

다만 방향을 달리할 작정입니다.

지난 2-3년사이에 중국 동남아 남미 등 해외 5개 지역에 브라운관 현지
생산체제를 갖췄습니다.

양적으로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는 질적인 성장을 추구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익률을 높이는 것이지요.

지난해 6.34%였던 브라운관의 매출액 대비 이익률을 오는 98년말까지 15%로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여기서 비축된 힘을 바탕으로 신규사업에 투자할 것입니다.

브라운관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모두 세계 1위의 자리를 굳히면서 첨단
종합부품업체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익률이 그처럼 높이 올라갑니까.

<>손대표=삼성전관은 한국인들의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확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현장기술" 개발로 생산성을 높여 이익률을 올립니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합리적인 조직관리를 통해 이를 달성하지요.

한국사람들은 일본인들처럼 섬세한 손기술과 눈썰미를 갖고 있지요.

또 미국에서 합리적 경영을 배워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장점을 제대로 "접"붙인다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현재의 조직이 접을 붙일 수 있을 만큼 건강한가요.

<>손대표=물론이지요.

우수한 인재가 많거든요.

다만 오랫동안 1위라는 자리에 있다 보니 종업원들이 서로 힘을 모으는데
열의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종업원끼리 서로 칭찬하자는 "한사랑 메아리"운동을 지난달부터
시작했습니다.

힘을 합하는 원동력은 사랑이거든요.

< 대담 = 조우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