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금융기관 인수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나산그룹이 한길종합금융을 인수키로 하면서 "다음에는 어떤 금융기관이냐"
며 금융기관의 기업매수합병(M&A)이 또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는 주인이 바뀐 금융기관이 유난히 많았다.

상장사이거나 계약당사자 합의로 밝혀진 것만 해도 10건이다.

지난해 한솔제지가 동해종합금융(현 한솔종금), 신세계백화점이 한일투자
금융(현 신세계투금)을 인수하는등 금융기관 M&A가 5건 정도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2배로 늘어난 셈이다.

올해 경영권이 넘어간 금융기관을 업종별로 보면 신용금고가 4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투자금융 2건, 종합금융 투신 생명 카드등이 각각 1건씩.

이들 금융기관을 인수한 기업의 공통점중 하나는 상당수가 성원건설 나산
그룹등 신흥 중견기업이나 건설업체등이라는 것이다.

한창 커가는 기업입장에서는 금융기관 간판을 달기만 하면 신용도가 올라가
자금조달이 쉬워지고 결국 기업확장에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특히 성원건설이 자사보다 덩치가 큰 대한투자금융을 전격인수, 일약 선두
중견그룹으로 부상한 것은 올해 대표적인 금융기관 M&A 사례로 꼽힌다.

성원건설은 대한투금 인수후 2달만에 또다시 대한투금을 통해 풍국상호신용
금고를 사들이는 아메바식 M&A를 거듭하고 있다.

종합금융그룹을 표방하는 업체들이 업무다각화 차원에서 금융기관 인수에
나서는 사례도 많다.

동양그룹이 미아멕스카드를 인수, 동양카드를 출범시킨 것과 신한투자금융
이 신신상호신용금고를 매입한 것이 이런 케이스.

금융기관 M&A의 또다른 특징은 지난 6공때 우후죽순격으로 세워진 지방금융
기관들이 매물로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충남지역만 보더라도 중앙투신(동양그룹), 중앙생명(선경그룹), 한길종금
(나산그룹)등 올들어 3개의 제2금융기관이 서울소재나 호남계열의 기업으로
넘어가거나 인수될 예정이어서 지역감정마저 생길 정도다.

생명보험업계의 경우 15개 기업의 공식참여를 정부가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직 생보사를 갖지 않은 L, K, H그룹등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때 내년엔 매물홍수를 이루고 있는 신용금고나 생명보험사
지방투금사등 금융기관에 대한 M&A바람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물건을 팔려고 내놓아도 유난히 매각이 성사되지 않는 업체가 있다.

공기업 민영화 또는 부실기관 처리차원에서 매각을 추진중인 산업은행
국민은행 신용관리기금등이 내놓은 매물은 모두 "낙찰률 0%"를 보였다.

산업은행은 지금까지 새한종합금융 2차례, 한국기업평가 5차례 입찰을
실시했으나 응찰자가 없어 모두 자동유찰됐다.

국민은행도 작년말부터 부곡.한성상호신용금고를 팔려고 내놓았으나 역시
새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신용관리기금이 경영을 맡고 있는 충북투자금융과 충북상호신용금고도
마찬가지.

이처럼 공공기관이 팔려는 금융기관 입찰이 무산된 것은 일부러 예정가를
터무니 없이 높게 잡아 유찰을 유도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마디로 팔고 싶지는 않은데 위에서 매각하라고 하니까 팔려는 시늉만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금융기관에 대한 입찰에는 대기업에 대한 응찰이 원천봉쇄되고
경영권 인수시기를 매각후 2년 뒤로 한다든지 해서 까다로운 조건이 달려
있다.

M&A전문가들은 "민간기업끼리의 금융기관 매매거래는 가격을 흥정하는
과정이 있는 반면 공공기관들은 일방적이고 비공개적으로 예정가를 정하기
때문에 금융기관 공매가 성사될 가능성이 적다"고 분석했다.

<정구학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