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새로운 경영이념과 기업윤리강령을 선포한 것은 시대상황에
맞는 깨끗한 경영풍토를 조성함으로써 비자금사건으로 실추된 기업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점에서 11일 선포된 현대의 신경영이념및 윤리강령은 도덕경영과
자율경영을 바라는 각계의 요구에 대한 재계의 첫 화답이라는 의미도
담고있다.

재계는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에 연루된 재계 총수들이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받음에 따라 과감한 경영쇄신으로 그에 대한 "성의 표시"를
해야되지 않느냐는 보이지않는 압력을 받아왔다.

또 그 내용으로는 정경유착근절을 비롯해 자율경영체제확립, 공정거래
질서 확립, 중소기업지원 강화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돼왔다.

현대의 경영이념및 윤리강령도 이런 내용들을 모두 담고 있다.

게다가 환경보호와 사원의 자기실현 지원, 기업의 사회적 책임완수 등
광범위한 기업의 덕목까지 포함하고 있다.

정경유착과 부조리근절,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완수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경영이념과 윤리강령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얘기다.

현대 스스로도 윤리강령의 전문에서 "진정한 시장경제질서 속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깨끗한 기업풍토를 조성하고자 윤리강령을 제정한다"고
명시했다.

현대가 비자금사건이후 처음으로 윤리강령을 선포하고 나선 것은
삼성그룹의 최근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은 그동안 "경영혁신의 선도자"역할을 자임해왔으나 이건희회장의
불구속기소라는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부딪쳐 정도경영을 앞장서 발표할
형편이 못되는 점을 감안해 선수를 친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정세영회장이 이날 인사말을 통해 "현대가 국가기간산업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유달리 강조한것도 이번 신경영이념및 윤리강령
선포를 계기로 재계를 선도하겠다는 뜻으로 재계는 보고있다.

현대는 도덕경영과 자율경영을 실현키 위한 구체적 방안의 하나로
이달말께 사상 최대규모의 임원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경영인이 중심이 되는 자율경영체제를 확립하겠다는 신경영이념및
윤리강령의 내용대로 전문경영인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인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룹관계자는 귀뜸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임원인사와 함께 지난 92년 대선이후 미뤄왔던 조직개편
작업도 완결짓는다는 방침을 세워놓고있다고 말했다.

그룹안팎에서도 실질적인 전문 경영인중심의 자율경영체제가 출범하지
않고서는 창업이래 처음 손질했다는 이번 "현대이즘"의 진의는 퇴색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현대의 이번 선언을 계기로 다른 대기업그룹들도 도덕경영
또는 정도경영에 대한 방안을 잇달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경련도 윤리헌장제정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윤리강령 제정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어느정도
실천에 옮기느냐 하는 것이다.

재계 뿐만아니라 전국민이 현대의 신경영이념및 윤리강령을 비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심상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