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별세한 이재준 대림그룹명예회장은 건설업 한 길을 걸으면서 대림
그룹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재계의 거목이다.

이명예회장은 지난39년 약관 22세에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해 부친의
정미소일을 거들다 경기도 부평역앞에 목재등을 취급하는 부림상회를 열어
업을 일으켰다.

그 당시 중일전쟁으로 목재수요가 달리면서 부림상회는 국내 수위를 다투는
대목재상으로 성장했다.

이명예회장은 남북분단으로 함경도지역의 사업기반(원시림개발지)을 북한에
몰수당해 좌절을 맛보기도 했으나 다시 남한의 건국 부흥물결을 타고
재도약에 나섰다.

이에따라 지난47년 부림상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대림산업을 출범시켜
부평경찰서 신축공사를 맡는등 토건업에 뛰어들었다.

이명예회장은 한국전쟁후 복구특수를 십분 활용했고 60년대 중반부터는
해외건설에 선도적으로 나서 대림그룹을 국내 정상급 건설사로 키웠다.

2세로 아들만 둔 이명예회장은 지난88년부터 장남인 이준용대림그룹회장
에게 그룹경영권을 넘기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차남인 이부용대림그룹부회장은 현재 독립사업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명예회장은 고 이재형 전국회의장의 바로 밑 동생이다.

또 이재우 대림통상회장이 이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이며 이재연 LG신용카드
부회장이 막내동생이다.

이명예회장은 평소에 요란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근검절약하기로
소문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와관련 차남 결혼때 "신랑 친구들이 함을 지고 가면 사돈댁에 폐가
된다"며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함을 싣고 전달하도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