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비리연루 기업인 전원 소환" 방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재계가 설왕설래하고 있다.

기업인 사정의 신호탄으로 우려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조기 매듭을 향한
전주곡"쯤으로 낙관하는 측도 있다.

비관론과 낙관론은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낙관론이 조금 더 우세한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재계 대표들이 3일 긴급 전경련회장단 회의를 열어 대국민사과
와 함께 "자정 결의"를 발표한 점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일단의 "면죄부"를 담보할 텃밭을 일궜다는 해석이다.

물론 현재의 재계 풍향계는 검찰이 언명한 "전원 소환"이 어떤 파장을
그릴 것인지에 쏠려 있다.

일단은 사상 최대의 "수사 태풍"에 휘말리게 됐기 때문이다.

그 의미가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데도 대부분 재계관계자들의 관측은 일치
하고 있다.

당초 재계는 대우나 한보그룹처럼 노전대통령의 비자금계좌를 실명 전환
하는데 직접 개입한 기업이나 특혜.이권과 관련된 업체 관계자들만이
검찰의 소환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러나 그런 관측은 빗나가고 있다.

6공당시 청와대에 돈을 건넨 기업인들은 일단 전원 소환해 조사한다는
게 검찰 내부방침으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관행적인 "떡값"만을 전달했을 뿐"이라며 상대적으로
느긋해 있던 기업들도 초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재계는 특히 전경련 주관으로 긴급 재계중진회의가 열린 시점에서 검찰이
"전원 소환조사"방침을 밝힌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제계의 "자정 선언"에도 불구하고 강도높은 "기업인 사정"에 나설
것이란 수사당국의 의지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수사 결과 50대그룹 대부분이 청와대에 돈을 건넨
것으로 밝혀지고 이에따라 검찰이 해당 기업인들을 전원 소환키로 한데
대해 "우리가 이제까지 상정해 온 것 중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일 노전대통령이 검찰의 1차 소환조사에서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기업들로서는 악재다.

검찰이 기업인들을 일일이 조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조사결과 이권을
놓고 6공정부와 "거래"한 혐의가 드러나는 기업들은 엄정한 사법처리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외용 반응"과 달리 실제론 느긋해하는 기업들도 많다.

검찰의 소환조사는 어디까지나 조기 수습을 전제로 한 "하나의 거대한
굿판"에 불과할 것이라는 "믿음"때문이다.

비록 검찰이 여론을 의식해 "전원 소환"이라는 외견상의 강수를 두고는
있지만 웬만한 혐의사실은 봉합해버리는 일종의 "면죄부 발급 의식"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겠느냐는 낙관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검찰의 기업에 대한 수사가 과연 "확산일로"를 치달을 것인지, 아니면
이런 저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수습국면"으로 접어들 것인지는 이르면
내주초께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13일로 예정된 강택민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16일부터 시작될 오사카
APEC(아.태경제협력체)지도자회의등 국내외 주요행사는 여전히 조기 매듭
쪽에 유리한 "확정 변수"이기 때문이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