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한 것도 죄인가"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파문이 확산되면서 최근 2-3년 사이 고속성장한
신흥기업들이 비자금 연루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밑도끝도 없이 시중에 나돌고 있는 비자금 관련 루머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일부 기업은 혹시라도 비자금 유탄에 맞아 기업이미지를 훼손하거나
자금압박을 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있기도 하다.

신흥 중견그룹들을 둘러싼 설의 골자는 이들 기업이 잇따른 기업인수등
사세확장을 하면서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을 끌어다 쓰지 않았겠냐는 것.

이같은 루머는 한보그룹이 최근 급속한 기업확장 과정에서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사채형식으로 갖다 쓴 것이 확인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설령 이들 기업이 전주가 노전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몰랐더라도 지난
93-94년께 시중에 떠돌던 "거액의 괴자금"을 짚어다 사용하지 않았겠느냐는
그럴듯한 추정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런 소문은 구체적인 근거 없이 그저 "...라더라"나 "...일 것이다"는
식의 "카더라 통신"이 대부분인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검찰주변에서 노전대통령 조사이후 걸려들 기업중엔 몇몇 중견
그룹들이 포함돼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면서 이들 기업들을 가시방석위
에 앉혀놓고 있다.

물론 해당기업들은 비자금 관련설에 대해 강력 부인한다.

기업확장에 들어간 돈은 대부분 제도금융권을 통한 정상적인 자금이며
괴자금등 정체불명의 사채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단지 기업덩치가 갑자기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비자금과 연결시켜 얘기하는
것은 음해에 불과하다고 발끈한다.

지난해 대한중석을 인수한데 이어 줄줄이 기업들을 사들이면서 주목받고
있는 거평그룹의 경우 주식시장등에서 비자금 관련 신흥기업으로 꼽히면서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거평그룹 관계자는 "그동안의 기업인수 자금은 건설중인 동대문도매센터의
분양대금으로 축적한 자산으로 충당했다는 사실은 여러차례의 세무조사에서
도 증명됐다"며 시중 루머로 오해를 받고 있는데 대해 "억울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나승렬회장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빌려쓴 사채
자금이 8백만원이라고 밝힐 정도로 기업자금 조달이 투명한데도 거평관련
소문이 꼬리를 무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역시 최근 연이은 기업인수로 루머에 오르내리고 있는 신호제지는 "시중의
소문은 그저 소문일뿐"이라며 "일일이 대응할 가치도 없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작년이후 한국강관 도신산업(완구및 전자부품) 신아(현신호유화)
모나리자(화장지)등을 인수했으나 이들 업체들은 대부분 경영부실 회사로
부채를 떠안는 조건이었다며 실제 기업인수에 들어간 돈은 모두 합쳐야
수십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 들어 급성장한 중견그룹인 나산그룹 관계자도 "신흥그룹을 둘러싼
최근의 루머는 대부분 근거없는 음해성 조작소문"이라며 "이같은 루머는
금융권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비자금 소문에 휘말려 있는 S,T,C기업등도 노전대통령의 비자금과는
"절대 무관하다"며 결백을 호소하고 있다.

신흥그룹의 결백여부는 물론 검찰조사 결과가 발표되야 판명날 전망이다.

따라서 일부 기업들은 검찰이 조속히 수사결과를 밝혀 자신들의 무죄를
증명해 보이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노전대통령 비자금 파문에 휘말려 있는 신흥중견그룹들이 검찰조사 결과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