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태풍 중심권이 은행권에서 투자금융등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면서 제2금융기관들은 초긴장상태.

검찰이 26일 노전대통령 비자금중 2백68억원이 동아투자금융의
어음관리계좌(CMA)에 차명으로 입금됐다는 사실을 공식발표하자
제2금융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 10여개 시중은행에도 검찰의 비자금 추적이 계속되자 제1,2금융권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

<>.투자금융 종합금융 신용금고 보험등 제2금융권은 지난 25일 검찰의
투금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질 때만 해도 "제2금융권엔 비자금이
스쳐지나갈 수는 있어도 은닉돼있을 가능성은 적다"며 느긋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하루만에 동아투금 비자금 계좌가 밝혀지고 전.현직 임원이
연루됐다는 발표가 나오자 투금업계는 허탈한 표정.

투금업계에 20년간 몸담아온 서울지역 투금사의 한 임원은 "사채자금을
양성화해가기 위해 세워진 투금사들이 "검은 돈 거래의 소굴"로 비쳐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제2금융권에선 동아투자금융 장한규 전사장이 이현우 전청와대
경호실장으로부터 2백억원이 넘는 뭉칫돈을 유치하면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느냐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만약 장사장이 비자금 유치및 관리에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장사장 개인은 물론 투금업계가 문책회오리에 휘말릴수도 있기
때문.

장사장은 지난 25일 검찰의 수사를 받은 뒤 26일에는 아세아종합금융
사장실로 정상출근.

아세아종금 관계자는 "장사장이 지난 16일 사원사장으로 취임이후
다음달 13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되기 위해
업무파악등을 열심히 해왔는데 열흘만에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게 돼
안타깝다"고 동정.

<>.서울광교 동아투자금융본점 3층 임원실에는 26일 이틀째 주요
임원들이 자리를 비운 채 외부에서 비상회의를 여는 등 부산한 움직임.

공교롭게도 박병희 동아투금 사장이 하루전날 투금업계 사장단의
미국 유럽 금융시장 참관차 출장길에 올라있어 회사 임직원들이
허둥지둥.

박사장은 출장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사 장영태이사는 영풍빌딩 14층에 있는 아세아종합금융 장사장
집무실을 찾아가 문제 예금의 실명확인여부를 보고하고 대책을 숙의하기도.

<>.동아투금은 지난 93년9월 고객이 맡긴 양도성예금증서(CD)를
가명계좌에서 실명으로 전환시켜주면서 전환일자를 두달전인 금융실명제
실시전으로 수정한 사실이 적발돼 영업정지및 배모 전무가 불구속기소
당한 것은 억울하다고 새삼 하소연해 눈길.

이 회사 관계자는 "배모 전무에 대한 재판에서 1,2심까지 무죄판결을
받아 11월중순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며 "실명제 위반혐의로
받는 유.무형의 불이익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것도 검토중"
이라고 말했다.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동아투금의 장한규전사장 (58)은 "비운의
금융인"으로 꼽히는 화제인물.

장사장이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딘것은 지난 61년.

보성고와 연세대 상대(56학번)를 졸업하고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장사장의 대학 동기생은 연세대상대출신중에서도 인물많기로 유명한
56학번들.

금융계엔 <>이관우 한일은행장 <>배찬병 상업은행전무 <>홍태완
제일은행감사 <>김창희 대우증권사장 등이 있고 재계엔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박용오 두산상사회장 <>이현태 현대석유화학회장
<>장철진 영풍광업회장 등이 있다.

한일은행에서 "행장까지 올랐을 사람"으로 평가됐던 장사장은 지난80년
무교지점장시설 "지점사고"로 한일은행을 떠났다.

장사장은 이후 82년 동아투금 설립때 창립멤버(부사장)로 들어간뒤
89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동아투금이 실명제실시이후 실명제위반의 첫 케이스로 걸려들어
두번째 비운을 맞는다.

94년 5월 장사장은 대림그룹계열 서울증권의 사장으로 선임, 취임식
까지 가졌으나 장사장의 "실명제위반 전력"이 공론화돼 3일만에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3번째 비운을 겪는다.

장사장은 지난 16일 아세아종금사장으로 취임했으나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네번째 복병을 만났다.

< 육동인. 정구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