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 일부 대기업 총수에 대한 소환조사가
임박했다는 설이 검찰주변에서 나돌자 해당 그룹 관계자들은 잔뜩 움츠린
가운데 정보수집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그룹의 총수가 소환조사를 받았다거나 소환통보를 받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하는 기업은 하나도 없는 실정.

특히 구체적으로 이름이 거명되는 기업의 경우 사소한 증시루머에도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룹의 관계자들은 "상대방 기업이 음해성 루머를 흘리고 있다"며
"무차별한 루머때문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각 그룹의 정보팀들은 특히 이번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어떻게 결말이
날것인지에 대해 나름의 시나리오를 작성해 그룹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는
등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

한편 이날 재계에서는 검찰의 소환조사설과 관련, "소환조사가 이루어져
특정기업이 비자금조성에 연루됐더라도 당시의 불가피했던 상황이 고려되지
않겠느냐"며 "처벌은 정치적 사건으로 기업이 속죄양이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0...차세대전투기사업의 주관회사인 삼성항공 관계자는 "삼성항공이 마치
비자금조성과 관련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으나 전혀 근거없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주력 기종 변경으로 삼성항공은 오히려 1천5백억원정도손실을
입었다"며 피해자임을 강조.

0...대우그룹은 지난 주말 해외출장길에 올랐던 김우중 회장이 25일
저녁 급히 귀국했다는 설이 나돌자 전혀 사실무근임을 자료를 통해 실증.

회장실 관계자는 "김회장은 미국을 거쳐 현재 폴란드에 있고 27일 중국
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출장스케줄을 제시.

이 관계자는 김회장이 중국에서 상해비즈니스센터와 자동차합작생산
프로젝트 등을 협의한 후 11월초 귀국할 예정이라고 설명.

그는 특히 김회장은 이미 김영삼대통령 취임초에 율곡감사와 원전비리
수사로 한차례 검중을 받았으므로 설사 일부 그룹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더이상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

0...현대그룹은 비자금사건과 관련 "정치권의 사건인데다 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망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는 분위기.

검찰의 재계인사 소환조사설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라고
일축.

종합조정실의 한 관계자는 "갖가지 소문이 있으나 그룹과 관련있는
루머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세영회장이 동경모터쇼 참석을 위해
일본에 나가있는 상태여서 소문이 증폭되는 것 아니냐"고 소문의 진원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눈치.

0...선경그룹과 동방유량은 그룹회장이 노 전대통령과 사돈관계여서인지
비자금사건과 관련, 그룹의 이름이 자꾸 거론되는 것에 대해 난감해 하는
표정.

선경그룹관계자는 "악성루머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 자체가 귀찮다"며 이
사건과 관련, 일절 노코멘트.

민주당 박계동의원이 동방유량에서 비자금을 세탁했다는 주장에 대해 이
회사 이재성 기획실장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며 "자산이 2천억원
에 불과한 회사에서 비자금 6백억원을 돈세탁할 수 있느냐"고 반문.

또 지난해 회사를 그만둔 자금부장 하모씨도 신회장과 친인척관계가
아니며 자금부장을 1년밖에 하지 않아 돈세탁을 할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강조.

0...최원석 회장이 리비아공사현장에 나가있는 동아그룹은 "지금 누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일체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

한편 이날 동아투금에서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계좌가 추가로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가자 동아그룹은 "동아투금이 그룹 계열사가 아니냐"는 전화에
일일이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0...롯데그룹은 6공비자금을 비롯해 92년 대선자금과 관련한 루머에
대해 "근거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전혀 모르는 일이며 아무관련이
없다"는 반응.

한편 그룹비서실에선 정보보고 차원에서 일본에 체제중인 신격호회장에게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상황을 수시로 보고하는등 상황변화를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

한편 노 전대통령 비자금이 동아투금에서 추가로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가자 동아그룹엔 "동아투금이 그룹계열사가 아니냐"는 전화에 일일이
해명하느라 진땀.


O...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한보그룹은 비자금사건과 관련, 해명 보도자료
까지 배포하며 "절대 무관함"을 주장하는등 적극적으로 대응.

한보는 특히 "지난 93년 10월이전에 6백50억원이 동화은행 영업부에서
정태수회장에 의해 실명으로 전환돼 한보철강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국민회의 이종찬의원의 주장은 항간에 떠도는 루머에 불과할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

또 "노전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 "성역은 없다"의 저자 함승희변호사는
이 책에서 비자금 실명전환과 연관됐다고 한 Z그룹은 한보를 지칭한게
아니라고 최근 밝혔다"고 지적.

이 그룹 관계자는 한보는 6공 시절 특혜를 받기 보다는 수서사건으로
정회장이 구속되는등 그룹해체 위기까지 몰렸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며
"정체불명의 소문으로 그룹 이미지 훼손은 물론 유형무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

O...대표적인 TK기업인 청구와 우방은 단순히 지역연고때문에 비자금
파문에 휘말리고 있다며 밑도 끝도 없는 루머에 불만을 표시.

청구 관계자는 "6공때 관급공사는 2건뿐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

우방관계자도 "TK기업이란 이유만으로 구설수에 오른다면 누구라도 기업할
맛이 나겠느냐"고 푸념.

(산업1부)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