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실에 앉아 보고만 받아서는 경영의 감을 잡을수 없다''

대기업그룹의 총수들이 요즘들어 흔히 하는 말이다.

생산혁명 시장개방 가격파괴등으로 경영환경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어
현장에 대한 감각 없이는 기업경영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대기업총수들의 생산현장 방문이 부쩍늘고 있다.

총수가 직접 공장 구석구석들 돌며 근로자들과 생산라인을 챙기는 ''현장
밀착경영''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현장방문은 창업주보다 만2,3세가 더 적극적이다.

경영혁신의 모티브를 현장에서 찾는 것은 물론 사업구상도 근로자들의
틈에서 한다.

기계 옆에서 새우잠을 자며 직접 공장을 지었던 창업주와 달리 현장에
대한 ''감''이 떨어지는데다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 경영으로는 신세대
종업원들을 이끌어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회장은 지난달 19일부터 22일까지 영호남의 8개 지역
공장을 둘러보는 지역사업장순시로 현장경영에 본격착수했다.

희회장의 지방공장 방문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

외국에서 온 국빈들의 삼성공장 시찰때 ''호스트''자격으로 지방공장에
내려간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현장점검을 위해 지방공장을 순방한예는
한번도 없었다.

삼성그룹 회장의 ''삼성공장방문''이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아이러니
를 연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회장은 지방공장의 임원들과 즉석에서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하는 등
행동으로 현장경영을 시현해보였다.

공장직원의 가정집까지 돌아보는 세심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회장의 현장경영은 ''공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5일엔 삼성생명의 보험생활설계사들과 도시락 오찬을 가졌다.

이회장의 현장경영이 서비스부문까지 확대된 셈이다.

이회장은 이달말 유럽에서 돌아온후 충남 온양반도체공장을 비롯한 중부
지역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번더 ''현장경영''을 해보일 예정인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의 구본무회장도 현장경영바람을 일으킨 주인공.

구회장의 그룹경영은 현장방문으로 시작됐다.

그는 대권승계 한달뒤부터 현장에 뛰어들었다.

지난 2월 회장취임후 한달여의 인사기간이 끝나자마자 LG전자 TFT-LGD
공장과 LG전선의 안양공장, LG반도체의 청주공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4월엔 일본으로 건너가 첨단통신분야의 기술제휴가능성을 직접 타진
했으며 5월에는 미국에서 멀티미디어 분야 사업성을 손수 점검하는 등 젊은
총수답게 힘찬 현장경영을 보여주었다.

이달들어서도 지방공장시찰에 이어 계열 연구소를 직접 찾아나서는 등
현장발걸음이 누구보다도 잦다.

구회장은 그룹대권을 이어받은지 1년도 안돼 재계총수로서는 아직 ''신인''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룹조직을 빨리 장악키위해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적극성을
보이는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장을 익히고 조직도 장악하고, 말하자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현장
경영이라는 분석이다.

이웅열 코오롱그룹부회장도 현장경영으로 조직을 손아귀에 넣은 대표적
2세 경영인으로 손꼽힌다.

이부회장은 작년 7월(주)코오롱대표이사장을 겸직하자마자 바로 경산공장
에서 집무를 시작했다.

한라그룹 정몽원 부회장의 행보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정인영회장의 차남인 정부회장은 지난3월 그룹 총괄업무를 맡는 직후부터
지금까지 매주 한번씩 한라중공업 음성.인천공장(수요일)과 한라시멘트
옥계공장(목요일) 만도기계군포공장(금요일)을 돌고 있다.

또 화요일과 토요일엔 한라건설과 한라공조 한라해운 한라제지공장으로
내려가는 등 스케줄이 ''현장''으로 빡빡하게 채워져 있다.

김석원 전회장의 정치참여로 지난 4월 총수자리를 맡게된 쌍용그룹의
김석준회장도 취임직후부터 현장에서 직접 사업을 챙기는 스타일로 나가고
있다.

취임후 양평에서 열린 쌍용양회의 무협상 임금타결의대회에 참석한 것을
신호탄으로 지금까지 숨가쁜 국내외 출장으로 회장초기를 보내고 있다.

WTO출범등으로 기업환경은 급속히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현장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을 수 없다.

변화의 흐름을 모르고는 기업경영의 올바른 윤곽을 그려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그룹총수들의 현장방문은 위기의식을 전파해 종업원들을
독려하는 ''전도사''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 양홍모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