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4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운 PC운영체제인 윈도95를 발표했다.

이날 전세계 2백여개 PC제조업체에서는 윈도95를 기본 탑재한 신제품을
동시에 발표했다.

이들 업체들은 "우리는 윈도95를 준비해왔다"(We''re building windows95)
라는 구호아래 일제히 신제품 판매에 나섰다.

영어권 국가의 PC업체들만 윈도95용 신제품을 내놓았던 것은 아니다.

대만의 에이서사도 싱가포르의 IPC사도 윈도95용 PC를 이날 세계인을
대상으로 발표했다.

2백여개 PC업체중에 국내업체는 단 하나도 끼어있지 않았다.

한글윈도95가 개발될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이같은 태도에서는 이미 세계를 대상으로 한 PC판매와 시장개척의 의지는
찾을 수 없다.

그저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국내시장에서 일정량의 몫만을 챙기면 된다는
발상이 밑에 깔려있다.

그러나 이같은 국내PC업체들의 기대도 국제화된 무한경쟁시대에는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다.

날이 갈수록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외산PC업체들이 한국PC시장을 더이상
"한국PC업체들만의 것"으로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윈도95는 그 운영체제가 갖는 성능의 좋고 나쁨을 떠나 PC제조업체들에게는
시장을 추가 확대시킬 수 있는 호재였다.

이같은 윈도95호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품기획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개발력이 함께 따라줘야 한다.

세계 PC시장을 이끌고 있는 PC제조업체들은 공통적으로 최근 1~2년간 세계
PC시장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높은 가격에 고성능의 제품 몇몇으로 승부하던 PC업체들이 다품종
대량생산에 의한 저가PC로 승부를 걸고 있다.

또 PC관련 기술동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소비자들의 요구를 빨리 받아들여
남들보다 발빠르게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PC업체들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설명한다.

세계 1위의 PC제조업체인 미 컴팩은 목표시장을 정하고 PC사양을 결정한후
이에 맞춰 개발을 끝내고 부품발주등 생산준비에 들어가는 전과정을
통합관리한다.

이같은 "제품 라이프사이클 관리"기법을 도입해 컴팩이 PC신제품을 개발,
생산준비하는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30일에서 45일.

에이서를 비롯한 대만업체들은 새로운 CPU가 인텔등에서 발표된 후 이에
맞는 주기판을 개발, 자사 PC에 탑재할 때까지 평균 10~15일정도를 필요로
할 뿐이다.

PC전문기업인 삼보컴퓨터가 데스크탑PC를 개발완료하는데는 평균 10주가
소요된다.

삼보가 최근 2~3년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다.

그전에는 6개월정도가 필요했다.

삼성 LG등은 최근 데스크탑PC개발기간을 4개월이내로 단축했다.

국내 업체들은 과거 샘플검토 엔지니어링샘플 시제품생산의 3단계로
나뉘어졌던 제품개발단계를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제품기획및 개발기간을
줄였다.

또 신제품 아이디어 수집과 함께 개발을 시작할 수 있도록 관련
개발인력을 대폭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백10명수준이었던 PC관련 개발인력을 올해안으로
3백명이상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또 데스크탑PC와 노트북PC개발 전담조직을 분리해 전문화된 제품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삼보컴퓨터는 올해 전년대비 개발비 예산을 87% 증가시켰으며 인력은 20%
증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이같은 노력을 통해 외산업체들의 국내PC시장 진입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산업체들이 자사의 제품을 국내에 들여올 때는 시간지체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세계 시장에서 외국PC업체들과 겨루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외산업체들의 제품기획및 생산준비에 이르는 평균기간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산PC업체들이 "한국화"를 무기로 국내PC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때
국내업체들은 이제 "세계화"로 맞대결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