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은 요즘 자금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의 관심은 자금마감이 아니라 여유자금운용에 있다.

"요즘은 자금을 운용하는데 더 관심이 있다.

여유자금이 있어 채권투자를 하려고 하는데 수익률이 너무 내려가서
물량을 잡지못했다.

일단 당좌를 끄는데 주력하고 있다"는게 S기업자금담당자의 말이다.

원래부터 자금사정이 좋은 포철같은 국제수준의 대기업 자금관계자들의
여유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들의 관심은 자금운용과 해외자금조달에 가있다.

해외증권을 발행하거나 해외에서 차입을 할 때에도 외국금융기관들이
앞다투어 달려든다.

한편에서는 이같이 자금이 흘러넘치지만 중소기업체들의 한숨과
하소연은 그대조를 이룬다.

특히 금융기관에 접근하기조차 쉽지않은 중소기업들엔 더더욱 그렇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한계기업들에 연쇄도산방지를 위해 대출하는
1호대출금은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지난 7월 29억원, 8월에 30억원이 증가했던 1호대출금이 9월에는
39억원이 늘어났다.

중소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이 대출금은 신용상태가 부실하고 담보도
없어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지 못하는 기업들을 주대상으로 한 것인데
계속 늘어나는 추세로 봐서 한계기업의 자금사정은 여전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계기업의 부도추세가 이어지면서 지난 17일에는 부도를 낸 중소기업
사장이 자살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울 중구에 있는 영세중소업체 W사의 이사장은 "금융기관들이 금리를
마음대로 올리고 꺾기가 여전해서 시중자금사정이 좋다는 얘기가 별로
실감이 안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도 시중금리가 하락했다고 해도 중소기업의 자금양극화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중소기업은행의 한영구 부장은 "양극화는 근본적으로 경쟁력면에서
비롯된 것이고 금리에 부분적인 영향을 줄뿐"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의류나 가구등의 경공업분야는 업종전망이 좋지않아 담보에
대한 요구가 더욱 까다로워지는 반면 중공업분야같이 잘되는 업종은
신용대출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을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용보증기금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 기금의 한 관계자는 "신용보증을 해줄만한 기업을 찾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정책에 따라서 웬만한 기업이면 해주려고 하는데도
잘 안된다"며 "그렇다고 부실화가능성이 아주 높은 기업들까지 마구잡이로
보증해줄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한다.

담보에서 3개월간의 임금과 퇴직금전부를 우선변제하라는 대법원의
판결도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어렵게 만든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한 은행관계자는 "담보에서 임금채권을 우선변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을 뿐만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임금채권이 커지기 때문에
담보가치조차 산정할수 없다"며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꺼릴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중에서도 중견기업이나 웬만큼 신용도가 있는, 이른바
일류 중소기업들에 돌아가는 자금의 몫은 많아지고 있다.

투금사에서 어느정도 신용도가 있는 중소기업의 어음을 받은뒤
고객에게 매출하는 표지어음매출은 계속 증가추세다.

이달들어 투금업계의 수신증가분 8천8백억원중 8천억원정도가
표지어음매출분으로 추산된다.

어차피 대기업들은 자금을 운용하는 입장이고 그렇다고 한계기업에
대출할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중견중소기업들에 대출을 해줄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기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결국 자금양극화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 가운데 중소기업들중에서도
어느정도 규모가 있고 우량한 일부 기업들만이 저금리시대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김성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