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세 봉건사회는 귀족들을 위한 사회였다.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귀족들은 일정규모의 봉토를 국왕으로부터 받고
주민들을 농노로 거느리고 살았다.

일반인들은 자신들이 1년동안 농사지어 거둔 수확의 10분의 1을
영주에게 바쳤다.

이같은 봉건사회는 귀족 한명을 위해 백명의 평민이 힘써 일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최근 몇몇 국내 기업들이 도입한 경영정보시스템(MIS)이나 전략정보시스템
(EIS)이 "귀족 소프트웨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경영자를 위해 수십 수백명이 대가없는 고생을 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이라는 지적이다.

또 "그들만의 천국"을 위한 프로그램은 필요없다는 소리도 심심치않게
들려온다.

MIS나 EIS등은 기본적으로 기업 업무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수시로 자료를 갱신해 경영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

MIS등을 이용하면 의사결정를 보다 빨리 내릴 수 있으며 기업경영환경과
관련된 각종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 "기업 정보시스템의
꽃"으로 일컫어진다.

이같은 시스템으론 경영자들은 자신의 PC앞에서 회사가 돌아가는 모든
사항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 도입된 일부 EIS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보시스템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태로 꾸며졌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장님이 어쩌다 한번 들여다 보는 경영정보시스템을 보충하기 위해
수십여명이 자료를 입력해야 한다.

"한명을 위해 백명이 고생하는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직원들이 문서를 작성하거나 팩스를 주고 받을 때, 외부 공문을 자료화할
때는 정보시스템으로 처리하지 않고 경영자만이 MIS나 EIS를 들여다본다면
그 시스템은 회사를 위한 정보화도구일 수 없다.

회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평소 일하는 사무업무(OA)과정을 정보화하는
것이 MIS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기본 정보인프라의 바탕없이 전략정보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모래위에
성을 쌓는것과 같다.

정보시스템은 "대중을 위한 대중의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경영층이 PC앞에 바짝 다가앉는 솔선수범이 병행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 김승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