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은 어렵다고 한다.

닭의 머리일 망정 우두머리가 되어 내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다
의견충돌이 생기면 이를 잘 해소하지 못해서이다.

오죽하면 동업은 절대 하지말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하지만 중소기업 가운데는 동업을 통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유기업체인 동화계량기 인쇄회로기판업체인 한일써키트 위생도기업체인
계림요업이 그 예다.

이들은 상대방의견을 존중하고 각자의 장점을 최대로 발휘,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며 기업을 이끌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2세들도 경영에 참가, 즐거운 동업 2대를 이어가고 있다.

김포공항 입구에 자리잡은 동화계량기는 외형 1백50억원에 7백만달러를
수출하는 굴지의 주유기업체.국내에선 처음으로 프리세트주유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2대에 걸쳐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창업주인 박낙진씨와 노세희씨가 각각 사장과 부사장을 맡고 있고
박사장의 아들인 해덕씨가 상무를, 노부사장의 아들인 기태씨는 전무로 뛰고
있다.

박씨는 중학교졸업후 서울시내 구청의 말단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박봉에 시달리자 사표를 던지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을 벌어보겠다고 의류상 주물공장 건설업등에 나섰으나 하는 족족
실패하고 사글세방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때 만난 사람이 공무원생활을 함께 했던 노세희씨였다.

둘이 의기투합, 74년 서울 독산동 임대공장을 얻어 오일미터기사업에 나선
것이 오늘날의 동화계량기로 발전했다.

박사장과 노부사장은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한다.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이며 해외출장도 같이 간다.

이달초엔 시장조사를 위해 함께 중국으로 떠났다.

"친구처럼 지내고 의견이 안맞을땐 서로 양보하니 트러블이 생길 일이
없다"고 회사관계자는 전한다.

2세들 역시 업무분장은 돼 있어도 항상 돕는 태도로 경영에 참가한다.

노전무는 영업을, 박상무는 생산을 맡고 있다.

이 회사는 내년매출을 2백억원 수출을 1천만달러로 잡고 있다.

국내 최고의 역사를 지닌 위생도기업체인 계림요업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면서 반세기가 넘게 화목한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동창업주인 서경교씨와 박채문씨 집안이 번갈아 가며 사장을 하고 있다.

한쪽이 사장을 맡으면 다른 쪽은 기획실장으로 핵심업무를 관장한다.

서씨와 박씨가 43년 함께 차린 유한회사 환선요업연구소가 지금의
계림요업으로 성장했다.

계림은 계열사로 계림토토 로얄토토 대현광산을 거느려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수직계열화체제를 갖췄고 연간 외형이 1천억원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으로 자랐다.

초대사장은 서씨가,2대는 박씨의 아들인 의택씨가, 현재의 사장은 서씨의
아들인 보철씨가 맡고 있다.

박의택씨의 아들인 동준씨는 기획실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동업관계가 3대에 접어들고 있다.

1세때는 창업과 수성에 주력했고 2,3세로 넘어오면서 해외진출등 공격적인
성향으로 경영스타일이 바뀌었을뿐 강산이 다섯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양가의 우의는 지속되고 있다.

인쇄회로기판을 만드는 상장기업인 한일써키트는 서울 대광고
동기동창끼리의 동업이다.

연대공대출신의 최규갑씨와 고대공대출신의 정홍섭씨는 자기사업에 대한
꿈을 키워오던중 혼자만의 힘으론 창업이 벅차자 77년 한일써키트를 공동
창업했다.

이들은 공동대표이사이며 직함도 둘다 사장이다.

최사장은 회사 경영전반과 관리 경리를 맡고 정사장은 영업 수출 인사를
주로 맡는다.

하지만 회사발전과 신규사업등 중요사안에 대해선 기탄없이 토론하고
이견을 해소한다.

30년가까이 친구로 지내와 눈빛만 봐도 심중을 헤아리는 단계가 되었다.

이 회사는 부가가치가 높은 다층인쇄회로기판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이들 동업기업인들은 "동업이 마음과 힘을 합쳐 하는 사업인 만큼 서로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노력이 성공의 열쇠"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