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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계의 ''세계1위 고지 탈환''은 굳혀져 가는가.

올 상반기동안 국내 조선업계는 총3백88만4천GT의 선박을 수주해 세계
신조선시장의 35%를 점유, 26%(2백97만GT)를 차지하는데 그친 일본을
제쳤다.

지난 93년의 ''반짝1등''에 이어 또 한번 수주실적 세계 1위에 올라섰다.

현대 대우 삼성 한진 한라 등 ''빅5''조선소들이 최근 잇달아 도크를
확충하고 일감따내기에 총력을 기울인 ''전과''다.

그러나 이러 수주1위는 한낱 ''속빈 강정''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선가와 건조능력등에서 일본에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조기술 경영관리등을 포함해 복합적인 건조능력을 재는 잣대인 시간당
건조량은 일본의 60%대에 불과하다.

한국 조선산업의 현주소와 경쟁력강화 방안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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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일본 노무라연구소(NRI)는 각국 조선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다룬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를 접한 한국의 조선업계는 발끈했다.

"일본과 한국의 주역교체 시기는 왔는가"라는 표제밑의 속내용들이 주로
한국 업계를 깎아내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요지는 "한국 조선업계는 세계1위가 될 조건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특히 반발이 심했다.

사실 이 보고서는 생산성이나 코스트와 같은 민감한 비교지표들을
다루면서 한국의 수준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한국의 생산성을 일본의 절반수준이라고 평가한 부분등에는
"편견이 깔려있다"(현대중공업 조충휘전무)는 지적이다.

설계기술만 봐도 한국은 일본의 80~85%수준에 와있다는게 국내 업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아픈 지적도 없지 않다는 "자성의 소리"도 들린다.

최근 수주실적 세계1위에 올라선 한국 조선업계는 외형만 그럴듯할 뿐
실체를 보면 "속빈 강정"이지 않느냐는 반성이다.

저가 덤핑수주에 "탐닉"하느라 생산성 향상을 소홀히 해온 한국 업계에
"생산엔지니어들의 열정이 부족하다"는 등의 지적들은 능히 충고가 될만
했다.

NRI리포트는 한국 조선업의 허실을 꼬집는데만 머물지 않았다.

"폭풍속의 선택"이란 표현을 써가면서 일본 조선업계에 위기감을
고취시키려 애썼다.

실제로 일본의 조선업계는 한국의 성장세를 의식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일본 대형조선소들이 최근 선박의 건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의
광주조선소등과 다투어 생산제휴를 맺고 있는게 단적인 예다.

업계의 이같은 자구노력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민관이 공동으로 1백50억엔(약1천2백억원)을 들여 초고속화물선(TSL)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뛰고 있는 일본업계에 비하면 한국 업계는 아직도 "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감따내기와 도크증설등 양적 팽창에만 치중하는 인상이 짙다.

세계 조선업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1위가 교체될 때마다 늘 저마다의
배경이 있어왔다.

1대 챔피언국인 미국은 1800년대 중반 선박의 소재가 목재에서 철강으로
바뀌는 추세를 좇지 못해 시장점유율을 잃기 시작했다.

뒤이은 영국은 1백년을 "호령"했다.

그러나 지난 50년대 생산기술이 리벳건조에서 용접건조로 바뀌는 추세에
적응치 못해 "권불백년"에 그쳤다.

당시 영국의 조선 노조가 감원을 우려해 신기술도입을 극력 반대한게
그원인이었다.

영국을 삼킨 일본은 효율적인 블록건조와 연계한 자동용접법의 개발을
발판으로 현재까지 40년천하를 구가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이 이 권좌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은 정말 세계 최강의 조선대국이 될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가격경쟁력만 놓고 보면 "예스"다.

예컨대 일본 엔화값이 1달러당 1백5엔수준으로 현재보다 더 절하된다고
쳐도 일본조선업체의 선가는 한국보다 24%가량 더 높을 것으로 분석될
정도다.

그러나 "가격"이라는 무기가 언제까지나 위력을 발휘할리는 만무하다.

당장 강재등 원자재의 한일간 가격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게다가 내년초 발효가 예상되는 반덤핑제소 국제협약이 제값받기를 부추겨
선가인상을 재촉하고 있다.

이처럼 그간 한국을 떠받쳐온 가격경쟁력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한국업계가 살길은 비가격경쟁력을 강화하는 길 밖에 없게 됐다.

품질 생산성 기술수준 등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다행히 해마다 한국 업계를 곤경에 빠트렸던 노사분규와 이로인한
조업중단사태가 수그러들고 있다.

덕택에 올들어 납기를 어긴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생산관리 기술이다.

"양"이 아닌 "질"의 세계제패를 향해 신발끈을 고쳐매야 할 때다.

<심상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