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보고의 후예 >

한국 조선산업의 발자취는 개국역사보다도 길다.

한민족이 통나무배를 만들어 압록강 대동강 한강 등을 건넜다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가야인들은 일본으로 이주할 때 말을 싣고 갈 정도의 큰 배를 지어
철기문화를 전파했다고 한다.

중국 해적을 소탕한 신라의 장보고장군은 "무적함대"를 자체 기술로
건조해낸 한국 조선산업의 태두였다.

이어 고려시대에는 길이 30m에 벼 1,000섬(150t)을 실을 수 있는 조운선이
등장했다.

원과 연합해 두차례 일본원정길에 나섰을 때는 단 6개월만에 대형전선
300척과 쾌속선 300척 병선 300척등 900척을 건조하기도 했다.

고려 원종15년(1274년)과 충렬왕7년(1281년)등 두번에 걸쳐서 이런
"대역사"를 이뤄냈다.

당시 일본원정길에서는 중국에서 건조한 배는 많이 깨졌는데 고려산은
튼튼해서 온전했다는 얘기도 전해져온다.

조선은 500여년동안 거북선을 비롯해 항상 700~800척의 전선을
자체생산으로 유지해온 조선강국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