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사정삼". 한국기업들에 익숙해진 중국의 행정용어중 하나다.

1주일중 나흘만 조업하고 사흘은 쉬라는 뜻이다.

이유는 단 하나.

전력난 때문이다.

청도시에 밀집해 있는 한국기업들이 바로 얼마전 이 개사정삼명령을
받았다.

"이 곳에는 휴일이 따로 없다. 정전되는 날이 곧 휴일이다".

S기업의 청도지점은 본사에 보낸 전문에서 현지 전력사정을 이렇게
전해오기도 했다. 사실 중국의 전력난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있었다.

작년말 무역협회가 중국 현지법인들을 대상으로 사회간접자본상의
애로사항을 조사했을 때 전력난이 28.8%로 첫손가락에 꼽히기도 했다.

옛부터 "지대물박"을 자랑해온 중국이지만 전력에 관한 한 "물박"은 커녕
"물박"인 셈이다.

중국 현지업체들 사이에는 전력난을 해결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까지
전수되고 있다.

불시 정전에 대비해 항상 작업기일에 여유를 두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일부업체는 전력사정이 좀 더 나은 곳에 분공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잔업을 위해 소규모 도급라인을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지 업체들은 특히 지역정부 전력담당자와의 유대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에서 우산가공 공장을 운영중인 모업체는 "유대"를 소홀히 했다가
댓가를 톡톡히 치른 일이 있다.

전력난에 대비해 아예 공장을 세울 때부터 자가발전기를 설치한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것만 믿고 전력공급국을 홀대한 바람에 한동안 공장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은 것.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주문량이 넘쳐 자가발전기를 최대한 돌려도
풀가동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었다.

노무관리 문제도 요즘 중국내 한국계 기업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있다.

성과급이나 잔업등에 대한 반발이 큰데다 이직률도 매우 높아서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진출을 시작하던 초기에 일본기업들에 조언을
구했더니 대부분 제일 어려운 게 노무관리라고 했다".

무공 이인석중국실장이 전해주는 일본기업들의 이같은 "경험담"이 요즘은
국내 기업들의 "체험담"이 됐다.

지난해 S사가 치른 곤욕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사례로 현지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회사는 생산성을 향상시킬 생각으로 현지 근로자중 일부를 국내로
불러들여 1개월간 연수를 시켰다.

그런데 이들이 중국에 돌아가서는 노사분규를 일으켰다.

현지 근로자 처우수준이 한국과 크게 차이난다면서. 이렇게 중국
근로자들이 "배짱"을 퉁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경제의 활황에 따라 신설 기업이 늘어나면서 근로자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삼성그룹같은 경우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현지 노무관리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정작 문제는 중국의 "정책 환경"이 심상치않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재등 특정 수입품목에 대한 원자재환급제도를 전면 폐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외자(외국계)기업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도 대폭 축소할
태세다.

그동안 활짝 열어놓았던 투자문호를 좁혀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젠 어느정도 됐다.

앞으론 우리(중국)에게 꼭 필요한 외국기업만 받아들이겠다"는 쪽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음은 중국 정부가 지난 6월 공포한 "지도외상투자방향잠행
규정"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일종의 외국인투자 지침인 이 규정의 요지는 노동집약적이고 환경파괴적
분야에서는 외국기업의 투자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

이 지침에 이어 지난달에는 가급적 외국기업을 내륙지역으로 유치하고
업종도 반도체 제철같은 이른바 "종자기술"로 제한한다는 "내륙지역
외상투자 장려사업부문"이란 걸 내놓았다.

발해만등 중국 연안지역에, 그것도 섬유 신발 완구 조립금속 등 저급기술
업종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 한국기업들의 대중투자 행렬이 전면 재검토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중국은 결코 만만한 시장도, 투자천국도 아님을 되새기게 하면서.

< 임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7일자).